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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Aug 26. 2021

새벽, 꽤 조용한 응급실에 다녀오다

어느새 작년 일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상태는  가지  하나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거나,  배가 고프거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기운이 바닥났거나.  번째 경우에는 있는 대로 먹거나 주는 대로 먹는다.  번째 경우면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먹을지 생각한다.  번째라면 일단 손에 잡히는 순으로 먹고 본다.    번째였다. 있는 걸로 메뉴를 조합해 봤고 결론은 스팸 구이와 조미김이었다.


집에 와서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작은 스팸 통조림을 뜯어 성둥성둥 햄을 썰어 바싹 구웠다. 밥은 탄수화물이니 조금만 퍼담고 김은 봉지를 뜯은 후 접시에 옮겨 담지 않고 그냥 플라스틱 통 그대로 두고 먹기로 했다. 다 먹고 나니 속이 가득 찬 것이, 양이 많았나 싶었다.


제대로 이상을 느낀 것은 씻고 난 이후였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미슥거리는 모양이 딱 체한 것 같았다. 위 성능이 별로 좋지 않다는(그런 주제에 종종 와구와구 먹어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잘 듣는 소화제는 상비되어 있다. 그걸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라앉아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후 몇 시간 동안 위통과 토악질이 이어졌다.


걱정에 안달 난 엄마를 겨우 달래 자라며 들여보냈다. 위가 쥐어짜듯 아픈 것이 아무래도 위경련 같았다. 전혀 소화되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게워지는 꼴을 보며 스팸 구이와 조미김의 사이가 이다지도 안 좋은 것이던가, 싶었는데 진이 빠지니 그런 생각도 희미해졌다. 어떻게든 버텨서 병원문이 열 때 첫 손님으로 갈 요령이었다. 그러다 격통에 시달리다 정신을 잃고 뭔가 큰일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도저히 끊기질 않았다. 가입한 후 한 번도 써먹은 적은 없고 갱신할 때마다 할증된 금액을 납부했던 실비보험을 떠올렸다. 결국 엄마를 깨웠다. 평소에는 아무리 잘못해도 엄마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아픈 꼴을 보이는 데다가 자는 사람을 깨우니 “미안한데”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필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날씨였다. 겨울 날씨로는 드문 일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큰 병원이 있고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1층으로 올라가 응급실을 찾았다. 코로나19 시국이라 그런지 길을 돌고 돌아 로비에서 체온을 재고 출입증까지 발급받은 후에야 응급실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급실의 문은 불투명했다. 그리고 출입문은 한 개가 아니라 접수처 같은 곳을 지나 하나의 문을 더 지나야 했다. 첫 번째 문을 지나고 어쩐 일인지 수기로 인적사항 같은 것을 적는 명부가 있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이름을 적었는지 생년월일을 적었는지 성별을 적었는데 그걸 다 적었는지 이젠 헷갈린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있다. 어쩐 영문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한 켠에 응급실에 방문한 사람의 증세 혹은 방문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내가 적은 곳보다 몇 줄 위에 ‘손목 자상’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둔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오랜 팬이다. 손목 자상이 어떤 상태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실 응급실 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소주, 양주, 맥주와 빈 속의 조화로 (아마도) 급체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실려갔고 정신 차린 후 너무 쪽팔린 나머지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주변이 분주했던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TV에 나오는 응급실의 모습은 그 희미한 이미지를 더 강화시켜주는, 다급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응급실의 문이 열릴 때, 손목 자상의 그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은 아닐까,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누군가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의 힘든 순간을 예의 없이 흘금 거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은 기우였다. 문 뒤는 말소리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바닥에 똑 똑 또옥 또오오옥 주르르르륵 찰박찰박 피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맨 발로 다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바닥도 깨끗했다. (아주 위급한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어두운 것은 피곤에 시달린 것이 분명한 당직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과연 저 분이 내 위통을 가라앉혀 줄 수 있을 것인가,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상징인 크록스를 신은 발을 보고 의심은 싹싹 지워졌다.


나는 분명히 배가 아팠는데 심전도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사지의 50퍼센트 정도만 맨 살을 드러내도 싫은데 생판 남 앞에서 앞섶을 풀어헤쳐야 하다니 환장할 노릇이네,라고 탄식할 타이밍이었지만 그보다는 저녁에 깨끗하게 씻고 자는 습관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맨 살을 드러내도 불쾌한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내 경우, 위험한 상황은 아니고 위경련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링거액을 맞고 약을 받아가면 된다고 했다. 주삿바늘을 꽂고 폭이 좁은 침대에 누웠다. 누우면 중력이 끌어당기는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터라 커튼을 치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 위급한 환자가 아니면 커튼은 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날 새벽의 응급실은 내내 조용했다. 사람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렸다. 내가 누운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몇 침대 건너, 한 분을 넘어가서 연배가 꽤 높으신 듯한 어르신이 누워계셨다. 볼캡을 쓴 젊은 남성분이 아들인 듯했다. 그 남성분은 누워있는 엄마에게 작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붙였다.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그저 그날따라 그랬던 것인지, 너무 조용했다. 사연인즉슨, 어머님은 치매를 겪고 계시고 락스를 들이켜시고 쓰러져 계신 것이 발견되어 응급실로 옮겨지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하셨다. 아드님의 목소리는 내가 잠시 선잠이 들기 전부터도 따뜻했고 선잠에서 깬 후에도 따뜻했다. 엄마, 이제 좀 있으면 괴롭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며, 너 때문에 이렇게 손이 싸늘하게 식었다며, 자꾸 누워있는 나한테 만져보라며 손을 내밀었다. 약간 정신이 돌아온 나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이마팍 얻어맞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약을 이틀 치만 준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강이나마 담요를 정리했다. 사람이 누워있던 세 침대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내 다리로 걸어서 나가는 모습을 어쩐지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다시 문 두 개를 지나 빙글빙글 로비를 지나 주차장을 찾고 차를 타고 집에 왔다. 집 밖에 나갔다 왔는데 샤워하지 않고(못하고) 침대에 기어들어가 누워야 한다니 안달이 났다. 이리 보고 모로 봐도 이유식 같은 쌀죽을 먹었다. 이런 걸 먹는데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이 참으로 인간의 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낮잠이 들었고 조용하고 평온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응급실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그 응급실에서 실제로도 글자로도 스쳐간 분들, 의료진분들 모두 무탈히 건강하시길..


그런데,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날 ‘격통에 시달리다 정신을 잃는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고 웅얼대던 게 이제와서는 엄살이었던 것만 같다. 기억 용량은 부족한데 이딴 것을 세세하게 기억하느라 다른 중요한 일들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데 자꾸 실패하고 있다. 이제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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