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no Dec 31. 2021

[베르세르크]를 봤다

[베르세르크]를 봤다(‘읽었다’는 표현보다 역시 ‘봤다’가 와닿는다).

선뜻 ‘다’ 봤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베르세르크]라고 하면 늘 그리피스가 페무토가 되기까지가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더딘 진행 속도와 내 하찮은 기억력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바람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1권으로 되돌아갔다.

그 과정이 지루했던 적은 없다.

심지어 다시 볼 때마다 선의 섬세함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경탄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었다.


무릇 ‘모험담’이라는 건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주인공과 동료들의 고생길 이야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보통은 주인공이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은, 작품이 건네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너무나도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베르세르크]는 좀 달랐다.


일단, 가츠와 그리피스의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가츠는 광전사의 갑주를 걸쳐도 사도급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리피스는 신이다.

심지어 그런 게 하나가 아니라 또 있다.

가츠의 동료들은 사도 정도도 아닌 뛰어난 인간의 수준이니 대전 상대가 적절히 분배되는 모양새도 아니다.

신급을 상대할 방법에 대해 생각을 쥐어짜 내 본다면 세계 그 자체의 영성을 빌리는 것인데, 그 순간 ‘가츠의 고생’이 아니라 ‘가츠와 시르케의 고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야만성에 고뇌하는 가츠의 매력이 반감된다.


가츠가 인간으로 남아있는 한, 능력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면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그리피스의 약점이다.

그리피스가 가츠 때문에 동요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팔코니아의 건설, 미들랜드와 그곳을 넘어선 지배가 그리피스 ‘그 자신’이 아닌 그저 신의 손을 빌리고 있을 뿐이라는 점, 가츠는 인과에 파문을 일으킬 무언가를 스스로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고 가츠를 질투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야 그나마 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추측건대 그건 가츠의 전생(轉生)은 재생산, 즉 임신과 출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육신의 이어짐이고 욕망의 전개이자 쾌락의 영속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과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인과이기도 할 거다.


이제, 이것들은 망상이라는 말조차도 못 하게 되었다.

가츠와 동료들의 고생기는 멈춰버렸다.

요정의 땅에서의 시간과 현실 속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더니, 그들이 엘프헬름에 들어간 것이 화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발 한 발 움직이는데 내 시간만 성큼성큼 이야기를 앞질러 달리는가 보다.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 편히 주무시길,이라는 말은 못하겠다.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 유계에서 엘프들 만나 허리 펴고 실컷 재미있게 지내시길..


[베르세르크] 끝을 덮는 2021, 심연의 고개.



작가의 이전글 작은 인간과의 조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