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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Jan 05. 2022

이웃집 살인마 -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

우음마식(牛飮馬食) - 책 이야기


나는 프로이트가 좋다. 그의 이론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인간이라면 차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자기 안의 심연을 거침없이 '까발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도 좋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통방통한 해설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리처드 도킨스에 푹 빠져서, 지하철에서 그의 책을 정독하던 사람에게 설레었던 적도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인간 본성에 대해 불편하지만 결코 반박하기 쉽지 않은 이론을 제시했다는 걸 들 수 있다. 그것은 그 강력한 이론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매우 간결하게 정리한 나머지 인간의 거의 모든 심리와 행동을 단순하게 설명하게끔 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한 마디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성욕과 이기적 유전자로 치환시켜 버린다는 것이다.(이런 류의 환원주의는 프로이트와 도킨스가 원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일종의 원자적 원리로 작용해 여간해서는 다른 이론(異論)이 끼어들 여지를 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웃집 살인마]의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이라는 구절에서 팍 하고 감이 와야 한다. 살인은 성욕으로 표현되는 생존 본능의 발현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아닌 게 아니라 저자는 살인 행위가 인간에게 있어 '특이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기나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생존과 생식의 경쟁상대를 없애거나, 부정한 배우자를 처벌하는 것이 생존에 더욱 이익이 된다는 점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살인 혹은 살인충동 역시 많은 수가 아는 사이, 특히 애정을 매개로 한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보이면서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런 종류의 살인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실제적 이익과 손실만이 고려사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손해로 간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예컨대 부인이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경우, '내'가 생존 경쟁에서 불리하게 되었다는 점만이 아니라 상대가 '나의 이익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분노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경우에서 더욱 자주 나타난다. 여성은 '자신만의' 이익과 손실보다 좀 더 폭넓은 이해관계를 갖는다.


"자긍심의 손상 이외에, 살해 동기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언급하는 것이 바로 그녀들의 유전적 친척들이 입는 손상이었다."(pp. 161-162)


이것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존과 번식 경쟁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여성은 번식을 위한 결정적 요인인 태, 즉 자궁을 품고 있다. 그로 인해 번식 과정에서 남성을 주도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여성은 많은 희생을 요구받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번식 경쟁에 있어서 남성보다 더욱 많은 보상을 필요로 한다. 유전적 친척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역시 임신 기간, 양육 기간 동안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남성의 경우는 여성과는 달리 자손이 자신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보장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탓에 임신과 양육에서의 안정보다는 번식 과정에서 투쟁에 가까운 독점 상황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배타적인 번식 과정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생존을 위한 투쟁은 진화의 과정 내내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그로써 인간에게는 번식을 (안정적으로) 이루려는 욕구가 본능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살인은 번식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학습되어 왔다. 결국 이런 진화와 생존의 과정은 인간에게 살인 본능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남성에게 조금 더 특화되어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준다, 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앞서 밝혔다시피 인간의 성에 대한 욕구, 그리고 생존을 위한 이기적 본능은 강력하다. 살인이 이 두 가지 동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면 살인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충동 중 하나이다. 달리 말해 살인은 필연적인 인간 행동이다. 그렇다면 살인은 정당한 행위인가? '인간은 살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타당하다'라고 말한다면 이건 전형적인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할 만하다. 저자인 데이비드 버스 역시 이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살인에 대한 적응 이론이 살인을 인정하고 허용한다는 의미를 내표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오히려 평온했던 과거의 인간들에 대한 신화를 창조해 내고 동시대의 살인을 현대 문명의 병폐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또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 이상의 호사를 누리며 단 한 가지 변수로 상황을 설명하려는 이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도덕적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들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해서 살인의 끔찍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p. 350)


인간이 살인을 '할 수 있다'라고 해서 살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본능과는 상관없이 살인은 '부정한, 잘못된' 행위라는 사실은 반드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어떤 이유를 붙여도 좋다. 무조건적인 당위로써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든지, 살인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든지, 살인은 극단적이므로 유덕한 인간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라든지 뭐든 상관없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번식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지고(돈, 외모, 여타의 매력 등) 살인을 통해 오히려 경쟁에서 도태되므로 살인은 진화에서 더 이상 유리한 대안이 아니라고 강조해도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본성을 통제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시 '인간다움'을 이해한다. [이웃집 살인마]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발생하는 살인 사건이 진화를 통해 인간에게 자리 잡은 본능 때문이라는 점을 보이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새로운 진화를 선택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화의 방향을 바꾸는 기제가 아직은 폭력적인(상당히 강제적이라는 점에서, 예를 들어 구금이나 사형)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이 뒷맛을 조금 씁쓸하게 한다.


인간은 인간이면서도 인간답기가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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