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딴지도 꽤 오래, 내 명의의 차를 갖게
된지도 꽤 오래되었다. 도로연수를 받는 첫날, 선생님은 내게 운동을 했었냐(운동신경이 있으면 운전을 잘한다), 부드럽게 브레이크 잡는 것이 수준급이다 등등 칭찬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장내 기능 연습할 때 S자 코스에서 도로 턱을 몇 번이나 올라탔던 건 도로에 나선 첫날, 90킬로미터 속도로 질주하면서 기억에서 날려 버렸다. 난 지가 운전을 되게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집 차’였지만, 우야든동 자가용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각종 바퀴 달린 물건들에 올라타서 동네의 내리막길 순례를 다니던 터라 자동차 운전도 무지막지하게 신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은 재미있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운전=신난다=아드레날린 대 방출=안 졸려’ 일 줄 알았는데, 웬걸,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잠은 왔다. 자칫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니 뒷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가더라도 누군가의 차가 우리 차를 스치고 가기만 해도 해결해야 하는 절차가 귀찮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 뒤로 빨리 가야 하고, 복잡한 길을 가야 하고, 멀리 가야 하고 등등의 운전할 일을 조금씩 기피하게 되었다.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운전을 자주 하지 않는다. 우리 집 차를 탈 때도 보통은 조수석에서 먹고 마시고 노래 틀고 검색하고 문자 치고 전화 통화하고 바깥 풍경 구경하고 운전 훈수를 둔다. 내비게이션보다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하는 착한 일도 한다. 긴장감이 없다 보니 다른 차 운전자가 조금 서툴게 혹은 거칠게 운전을 해도 너그러워진다. 그런 상황을 마주친 우리 차 운전자가 간혹 기함하고 욕을 내뱉을 때 나는 되려 우리 차 운전자를 나무라기도 했다. “욕하지 말라고!” “욕하면 승질만 더 나는 거지 뭐~”
한동안 그럴 일이 없다가 요사이 운전, 그것도 혼자서 운전을 할 일이 간간이 생겼다. 그런 경우, 대개는 훤히 아는 길을 다닌다. 돌발상황을 마주할 상황은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도 들어가면서 운전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옆 동네에 다녀오는 길. 좌회전 차선인 옆 도로에는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직진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조그맣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앞에도 뒤에도 오른편 옆에도 가까운 거리에는 차가 없었다. 내가 주행하고 있는 도로의 왼편 도로, 늘어선 대열 가운데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오른쪽, 그러니까 내가 주행하고 있는 도로로 빼꼼 끼어들기 시작했다. 차 두 대 정도의 거리 앞이었다. 문제는 나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고(제한속도 이하이기는 했다) 끼어드는 차는 서 있다가 나오는 바람에 속도가 느렸다는 것이었다. 내가 주행하던 오른쪽 차도에 차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급하게 살짝 핸들을 꺾고 차선을 조금 넘어 끼어드는 차를 겨우 피해 계속 주행할 수 있었다.
“아 X! 저 미친 XX! 운전을 왜 저따위로 X하고 XX이야!”
만일 내가 그 순간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면, 운전자의 순발력을 칭찬하고 사고가 안 났으면 되었다며 욕하지 말고 진정하라고 했을 거다. 분명히 그랬을 거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 보니 확실히 달랐다. 그 순간 이성이 시속 60킬로미터라면 감정은 시속 130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놀라고 열 받은 감정을 타고 욕이 한동안 날아간 후에 이성의 작용이 뇌리에 와닿았다. ‘사고 안 나서 다행이다..’
무릇 동서고금의 성현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에게 비추어 타인을 대하라 하셨다. 우리 차의 다른 운전자, 조수석에서 혼자 성인군자인 것처럼 입 털어서 미안합니다.. 앞으로도 한층 더 안전 운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