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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Jan 20. 2022

내 심장을 향해 쏴라 - 마이클 길모어 저, 박선옥 역

우음마식(牛飮馬食) - 책 이야기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것'은 생각지도 못한 때에 만나는 경우가 있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도 그랬다.

신문인지 잡지인지를 뒤적거리다 눈에 들어와 기억에 아로새긴 책 제목. 그리고 그건 그야말로 '내 인생의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감히 다 읽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의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소위 말하는 유명인이다. 유명한 음악 평론가이자 [롤링스톤]지의 수석 편집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로서의 마이클 길모어는 미국을 뜨겁게 달군 살인범이자 사형수인 개리 길모어의 동생이다. 개리 길모어는 유타 주에서 두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1977년, 미국에서 10년 만에 사형 집행을 당한 장본인이다. 여기까지라면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는 비극에 다를 것 없다. 이 사안의 특이한 점은 그가 자신의 파멸을 위해 법과 국가를 '이용'했다는 데 있다.


개리 길모어를 둘러싼 비극-그 자신의 비극과 그가 행한 범죄의 결과로서의 비극을 모두 포함해서-은 그의 가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마이클 길모어는 상당히 상세하게 가족의 뿌리를 되짚는다. 그들의 어머니 베씨는 유타 주 출신이며 매우 신실한 모르몬 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다소 경직되었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에 비해 자유분방한 편이었던 베씨는 결국 가족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 어린 시절 동생을 잃은 기억, 억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끝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것이 그의 심연이라면 심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베씨는 집을 떠나 생활하던  프랭크 길모어라는 매력적인 남성을 만나고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으로 인해 길모어 가족에는 "어떤 강력한 힘을 지닌 과거의 신비로서" 그들 가족의 "운명을 지배하는 ,  죽음의 세계의 신비"(1, p.151) 드리우게 된다. 아버지 프랭크 길모어는 끊임없이 길을 떠나 집을 비우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애정을 갈구하고 그것을 끝끝내 폭력으로 표현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어린 자식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조금 자란 후에 그들에게 가하는 무참한 폭력은 가족이 직면하는 비극의 핵심이었다. 둘째 아들이었던 개리는 유독 아버지의 애정에 굶주리고 그의 폭력에 분노했다.


이것이 개리가 결국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틀에서 나오고 싶어 했지만 결국엔 누구도 자신을 보듬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개리와 마이클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탓에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지만, 어느 날 개리는 동생에게 한 가지 확실히 기억하라는 충고를 한다. "넌 강하게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느낌도 갖지 않는 거야. 고통도, 분노도 , 아무것도 말이야."(1권, p.321)


하지만 개리는 결국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쥐려고 결심한다. 분명 비뚤어진 마음이었겠지만 개리 길모어는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 국가의 폭력에 대해 아마 '엿 먹어라'는 심정으로 도전하려 했을 것이다. 그는 사형제가 있는 유타 주에 가서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하고 사형 선고를 받아낸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뿌리 가운데 하나인 어머니, 어머니의 바탕이었던 모르몬 교 식으로 대지를 피로 적시는 속죄의 방식을 택한 걸지도 모른다.


물론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속죄의 방식은 죽음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죄지은 자가 감히 용서를 입에 올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죄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속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개리에게 있어서 "어느 날 죽임은 그 삶으로부터의 탈출구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자유"이며, "자신을 해방" 시키고 "탈출"(2권, p.263)이었다. 결국 개리 길모어는 그의 바람대로 죽었다.


그 뒤로 길모어 가족은 와해되었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쓴 마이클 길모어는 가족의 비극, 혈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자식을 낳을 소망을 포기한다. 부모님, 형제들을 사랑함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증오"(2권, p.99)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여전히 개리와 관련한 악몽을 꾸고 "무사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위안을 얻고 잠에 빠져든다.(2권, p.361)


내가 이 책에 빠져든 이유는 개리 길모어의 사례가 충격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죽는 일은 언제나 비극이지만, 이런 강력범의 얘기가 더 이상 낯선 게 아닌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나는 마이클 길모어가 가족의 서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가족의 울타리를 증오'한다는 선언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용기에 감탄했다. 가족은 '가족'이지만 간혹 문제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심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은 혹은 나는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사 오래된 종교경전에 나오는 가족 이야기를 읽은 듯한 느낌이다. 비극은 개인의 역사 속으로 파고들어 짐짓 사소한 것처럼 반복된다.


사족 - 책의 후반부에 뒤통수 치는 반전 아닌 반전이 나온다. 왜 아버지인 프랭크 길모어가 개리 길모어를 유독 모질게 대했는지에 대해. 인간은 정말 알 수가 없다. 특히 인간의 '죄의식'은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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