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불자라고는 쉬이 말할 수 없으나 불교와 아무런 연이 없다고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나.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기획전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틀 후에는 어느새 이 전시장 앞에 서 있던 것도 다 인연이겠지,라고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신비롭다’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왜 ‘신비롭다’는 형용사가 붙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인도라서, 아니면 불교라서 으레 연결시키는 짝꿍 표현인 건가. 어쩌면 그냥 나의 감수성이 종지만 해서 저 신비로움을 포용할 수 없는 건지도. 어쨌거나 신비롭지 않으면 어떠랴, 흥미진진했으면 됐다.
이번 전시는 남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맞물러, 주조된 스투파(Stupa, 불탑) 예술을 소개하고 있었다. ’불교의 본원지=인도‘라는 도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도는 크다. 게다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내추럴 본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다. 이 쬐끄마한 한국만 해도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지 않나. ‘감자떡은 전라남도 음식이잖아요.’라고 하면 강원도민분들께서 화가 나시겠지. 불교가 인도에서 태동한 건 맞지만 사실 부처님 생전에 주 활동 무대는 인도 북부였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주 EBS 세계테마기행을 보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지금은 네팔 영토라고 한다. 남인도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난 적이 없단다. 부처님 사후에 불교가, 불교의 가르침이 퍼져 나가면서 남인도에도 닿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을 만난 적이 없으니 귀한 사리라도 모시는 것. 그래서 등장한 것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인 스투파라고 한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건지, 낯선 것에 풍덩풍덩 마구 몸을 내던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보이더라도 그 용기는 어떻게든 익숙한 것과의 접점을 찾아 그 끈을 부여잡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남인도 사람들도 그랬던 걸까. 그들은 스투파에 기존에 익숙한 여러 상징들을 함께 남겨 두었다고 한다. 이후에 그것들은 불교의 상징물로 흡수되었다고. 풍요를 상징하는 남녀의 모습, 상상 속의 존재인 사자, 나가, 마카라, 그리핀 등등, 자연의 정령인 약샤/약시까지, 언젠가 한국의 사찰을 가면 비슷한 것들을 한껏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시된 스투파의 모양(부조이지만)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정방형의 상자모양 위에 구체가 올라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스투파와 달리 외벽에 별다른 장식이 없었다. 현재는 소실되었지만 예전에는 실재했다던 그 스투파에 대한 설명에는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차마 장식으로 그릴 수 없는 신실함이 그 간결함에 고스란히 담겼나 보다.
그런데 잠깐 딴생각을 허용해 보자. 아래쪽의 네모는 땅을, 위쪽의 동그라미는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을 상징하는 동그라미라니, 이거 좀 익숙한 느낌이다. 그런 상징은 예전의 건축물, 그림 등등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나? 갑자기 ‘지구 평면설’이 떠오른다. 어쩌면, 어쩌면, 고대에는 정말 지구가 평평했던 거 아닌가? 고대의 평평한 땅 중심에 아틀란티스가 있었고 점점 땅이 구형으로 바뀌면서 엄청난 지각변동 때문에 그곳이 심해로 가라앉은 것 아닐까…라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지껄여본다.
다시, 스투파의 세계로. 스투파 예술은 설명 그대로 인도인의 정신문화세계와 불교가 어우러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아주 약간, 개운치 않은 맛도 남았다. 지금이야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철학, 생활양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스투파의 숲> 전시를 보고 나니 ‘불교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부처님, 부처님의 상징을 보필하는 이들은 모두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스투파 장식은 하나같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시간과 노력, 거기에 돈이 엄청 들어갔을 거다. 결국 스투파는, 다시 말해 불교는 당대의 가진 분들, 소위 귀족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처님의 옆에 설 자격을 가진 이들은 정령이거나, 신성한 존재이거나, 부유한 자들이거나. 애초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 먹고사는 데 필요 없는 걸 들여오는 것 자체가 서민적이지 않다. 과거의 종교는 꽤 사치스러운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주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종교의 문턱이 낮아진 건 참 좋은 일인 듯싶다.
이런 딴지와는 별개로, 그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작품들, 사랑스러운 정령과 동물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등에 진 봇짐(!)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 한 가지 더! 나가나 그리핀은 지금도 판타지 등에서 비슷하게 재생산되지 않은가. 예전분들은 그들을 보는 눈이 따로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현대인들의 상상력은 (지구가 둥글어지면서^^;;) 비루해져 가기만 해서 과거의 상상에 빚만 늘리고 있는 걸까. 즐거움과 미스터리함이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