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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l 05. 2019

'계획'이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우리는 계획을 강요받는다. 학교 생활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방학에는 생활계획표라는 것을 짜고 그것에 맞춰서 생활해 보려고 하루 이틀 정도 노력을 한다. 또, 장래희망이라는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먼 미래의 목표를 세워보기도 하지만 99%의 사람은 장래희망과는 전혀 동떨어진 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곳에 가면 시작부터 멘붕에 빠지게 된다. 아니 강의 시간표를 나보고 직접 짜라고? 그러다 원하는 대로 신청이 안되면 또 2차 멘붕에 빠지며 플랜 B, 플랜 C라는 것의 존재를 영접하게 된다. 수업은 내 맘대로 빠져도 되고,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새로운 신세계의 등장에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른 채 빠져들다 보면 참담한 성적표가 우리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고 나서야 다시금 정신을 차린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는 계획이라는 것의 실상을 조금씩 조금씩 학습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대학교까지는 예행연습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군대를 거쳐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야말로 계획으로 시작해 계획으로 끝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연***기획에서 한 8년 정도 근무를 하던 당시 매년 연말이 되면 팀별, 부서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임원들의 검사(?)를 받는다. 모든 팀장님, 부장님, 본부장님들은 다들 그럴듯한 포장으로 준비를 해서 발표를 하는데, 어쩜 그렇게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지, 그들의 발표한 대로라면, 회사는 매년 20프로 이상씩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 사업계획 발표도 한 3-4년간 경험하다 보니 이건 단순히 포장 정도가 아니라 명절 선물세트 같은 과대포장의 대잔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럴듯한 광고주 그럴싸한 프로젝트 가상의 신규 광고주 영입 계획 등 화려한 사업계획 발표를 듣다 보면 거의 VR과 같은 가상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화면에는 존재하나 실체는 없는.. 그런 유니콘 같은.. 오아시스 같은.. 신기루 같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에..  손목을  수도 있다) 임원들은 120프로~150프로 초과 달성 목표를 발표하는 발표자에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하지만, 상대적으로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초라한 계획표를 준비한(그것도  나름의 엄청난 과대포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는 항상 임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갈기갈기 난도질당하며 영혼까지 탈탈 털리곤 했다.


그런 화려한 이벤트(?)가 있고 나서 또 일 년이 지나 실적 결산 발표를 하는 날에는 새로운 진풍경이 벌어진다. 분명 1년 전 발표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사업계획서와 사업결산 표의 싱크로율이 모든 부서가 거의 불과 20% 내외이다. 이건 예외 없이 거의 매년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런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매년 겪으면서도 그 형식적인 의식을 한해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결국 사라지고 없는 회사가 되었지만..)


어차피 20% 정도밖에 안 지켜질 사업계획이라면 계획을 안 세우는 것이 맞는지, 그래도 그 허황된 계획이라도 세우는 것이 맞는지 늘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곤 했는데, 그 판단은 개인들의 경험에 맡기도록 하겠다.


약 2년 전 멀쩡히 다니던 그럴듯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던 시절. 남한테 보여주기 식의 사업계획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늘 내가 손가락질 해왔던 그 예전의 과대 포장된 계획서가 나왔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이고 계획한 대로 착착 풀려야만 간신히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얇디얇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허망한 사업계획..


그것이 오랜 학습으로부터 기인된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 속의 또 다른 자아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여튼 그런 계획서를 만들 수밖에 없을 만큼 열악한 사업계획을 가지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2년이 지난 지금 역시나 그 허망한 사업계획은 여지없이 사무실 구석에 먼지 앉은 채로 처박혀있고, 우리는 그때의 그 사업계획과는 전혀 다른 광고주와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굳이 싱크로율을 따져보자면, 약 10프로 미만? 그전에 20프로도 안 되는 싱크로율을 비난했던 나로서는 참담한 성적표이지만,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우리가 조금 변경된 (사실은 아예 다른..) 계획으로 나름 승승장구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연말이 되면 아마도 우리는 또 사업 계획을 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높은 싱크로율을 가지든 간에..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과연 계획이란 무엇인가? 개인이던 회사던 누구나 계획을 한다. 당장 내일의 계획을 하는 사람도 있고, 5년 10년 20년 뒤의 장기적인 계획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계획은 반드시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ㅎㅎ 내 알 바 아님. 왜냐면 나도 모름. 그래서 안알랴쥼)


#계획이란무엇인가 #무엇인가시리즈편승
#계획은필요하다 #계획은필요하지않다
#알아서들하시길 #내알바아님
#학창시절방학계획표제대로지켜본적있는사람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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