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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07. 2021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용기 (혹은 객기)


누구나 자신만의 기호가 있다. 어떤 노래를 즐겨 듣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등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나의 경우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선택을 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어떤 사회 현상 같은 것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을 때, 나는 열광하지 않았다. 물론 2집 발매 이후에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또, 전 세계적으로 어벤저스를 비롯한 마블 시리즈가 대유행을 할 때도 나는 시큰둥했다. 능력 가진 것들이 잘난 척하는 그런 영웅 놀이에 장단을 맞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좋아한다. 작가 프로필에도 나와있지만 나의 아이디는 모든 사이트 공통 <zinzery>이다.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 이름에서 파생되어 '진절머리' 혹은 '진저리'가 평생 별명이자 놀림감이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모두 아이디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 나이대의 청소년기에는 아이디라는 개념조차도 희박했었다. 성인이 되어 아이디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야 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jinzery 혹은 zinzery>로 아이디를 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바로 나니까


나를 어릴 적부터 알아오던 사람들은 나를 늘 '진절머리'라고 불렀고,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그게 익숙하고 기억에 잘 남을 것이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나를 소개할 때에도 "진철=진절=진저리=zinzery"로 가는 과정을 살짝 설명하고 나면 단번에 이메일을 머릿속에 입력한다. 세상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수천 명은 있겠지만 단 한 명도 <jinzery 혹은 zinzery>를 선점하지 않았다. 아마도 평생 같은 놀림을 받았을 그 별명이 썩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덕에 남들처럼 아이디에 숫자나 기호 같은 것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엄청난 장점도 있다. 




회사를 처음 만들고 운영할 때에도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분명 쉬운 길도 있었다. 뻔히 정해진 코스가 있다. 그 길로 가면 아마도 조금 더 편하고 쾌적했을 수도 있다. 그 쉬운 길을 두고 아주 힘들고, 험난한 코스로 나를 내몰았다. 딱히 명확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게 옳다고 믿었고, 그게 조금 더디더라도 더 단단하게 나를 세워줄 거라고 확신했다. 


회사의 모든 운영 방침은 직원들에게 최우선적으로 맞추었다. 15년간의 직장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 일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급여, 복지, 인센티브, 복리후생, 근무환경, 근무시간, 휴가, 자기 계발 등등... 회사의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조금씩 조금씩 업그레이드해나갔다. 


직원들 잘해줘 봐야 아무 짝에도 필요 없어. 
수틀리면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리니까.


5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다른 대표님들의 경험이 실제로 그랬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잘해줬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안 봐도 비디오.. 아니 안 봐도 넷플릭스다.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 방식은 그랬고, 그게 직원들의 마음에 잘 어필이 되었던 것 같다.


클라이언트의 여러 가지 요청에 맞추다 보면 간혹 가혹한 업무량과 부당함에 맞닥뜨릴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피하지 않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거나,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모른 척하면 내 몸과 마음은 조금 편해질 수 있지만, 결국 더 큰 파도가 되어 돌아온다. 가래로 막을 것은 가래로 막는 게 정답인 것이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잘 해결이 안 될 경우가 있지만 그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원들이 그 진심에 공감해 주기도 한다. (제발 직원들이 이 글을 보지 않기를...)


그렇다고 매번 세상과 삐딱선을 타는 것은 아니다. 대세를 따라야 할 때와 내 소신을 지켜야 할 경우를 잘 구분하여 행동하는 것도 CEO의 중요한 덕목이다. 살아보기 전까진,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정답을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오늘도 여기저기 부딪히며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5년 차 초보 대표이지만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 번 계속 부딪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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