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대수냐, 건강이 최고지, 일베는 안된다.
올해로 고1이 된 큰 아들이 공부 포기 선언을 했다. 중1 때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온 사춘기는 중3을 거쳐 고1이 돼서야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공부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는다.
공부를 지독하게 안 하던 중2 시절에 엄마의 반협박으로 2달 정도 수학/영어 학원을 다녔던 아들의 수학 성적은 50점대에서 100점으로 껑충 뛰었다.
엄마의 입장 : "거봐 하니까 되잖아" (기본 머리가 있으니까 조금만 노력해도 성적 올라가잖아)
아들의 입장 : "거봐 하니까 되잖아" (언제든 맘먹으면 공부는 할 수 있잖아. 그니까 좀 내비 둬. 알아서 할 게)
성적이 나오고 아들은 다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2년째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첫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빠를 정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했던 기억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크게 공부에 뜻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았으나, 그저 수학이 재미있어서 야자 시간에 수학 문제만 주구장창 풀었던 기억뿐이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고1 시절에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능시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딱 우리 학년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학력고사가 뭔지, 수능이 뭔지 구분할 정도의 실력도 안되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첫 수능 모의고사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학력고사 기준으로 하면 반에서 중간이나 겨우 가던 실력이 수능 시험에서는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실력으로 급상승하였다. 이 정도 성적이면 인서울 대학교도 갈 수 있는 성적이라고 했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가 오다니. 역시 나는야 샛복(*)의 사나이'
그때부터 공부에 조금이나마 재미를 붙여 결국 재수 끝에 홍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정원 33명에 예비합격 66번으로 문 닫고 들어간 사실은 안 비밀) 지방 대학은커녕 전문대에 겨우 갈 실력이었는데, 단번에 인서울 대학생이 된 것이다. 부모님은 내색은 안 하셨으나 엄청 기뻐하셨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기쁜 마음으로 학비를 제공해주셨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아들한테 공부 안 한다고 잔소리를 하는 게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었다. 우리 때와는 다르다며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시켜보려는 아내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물론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진짜 쿨하다 못해 콜드한 엄마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랑스러운 큰 아들은 그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는다. 시험기간에 일찍 끝나면 노래방을 간다거나, 피시방에서 죽치고 사는 식이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다가도, '너 자신을 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중1이 된 둘째 아들은 형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자신은 절대 형처럼 안 할 거라며 숱한 다짐을 했던 그 순진하고 착해빠진 둘째는 온데간데 없고, 형 조차 혀를 찰 정도로 고집을 피우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꼭 학원을 다니겠다고 오늘 단단히 약속을 받아 내긴 했지만 진짜로 가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안 가면 그만이지 뭐. 두 놈 다 학원을 안 다니니까 한 달에 한 100~150만원은 세이브되고 좋구만. 차라리 그 돈으로 배달이나 신나게 시켜먹자고..."
이제는 아내가 더 해탈한 모양이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 우리를 원망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해도 좋다. 심하게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해도 감사하기로 했다. 워낙 사건사고도 많고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꼴찌라도 좋다. 제발 일베만은 하지 말아 다오!"
이게 요즘 아들들에게 하는 내 유일한 주문이다.
아들들아, 너희들 초상권은 못지켜줘서 미안하다! 공부도 안하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거 아니냐? (내 얼굴은 교묘히 가렸단다. 으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