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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15. 2021

작용과 반작용 Ⅱ. 코로나가 준 선물

그때는 슬펐으나 지금은 매우 고마운 일들


내 브런치에서 아마 이런 비슷한 주제의 글을 여러 가지 제목으로 이야기했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있는 선택의 순간들에 어떤 선택은 크게 의미 없이 지나갈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하나하나의 선택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고, '선택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의 이 선택이 나중에 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결국 겪어봐야 알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고, 또 후회를 한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TV 인생극장>은 인간의 그 보편적인 심리를 정면으로 이용해서 아주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지난번 작용과 반작용 1편에서 다뤘던 내용 이외에 참 많은 선택의 장난에 울고 웃었던 중요 사건들을 더 소개해보고자 한다. (작용과 반작용 지난 글 : https://brunch.co.kr/@zinzery/97)




EP #01. 사옥의 탄생


2년간 숨만 간신히 쉬며 연명하던 우리 회사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동안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매년 100% 이상 성장하며, 그에 따라 회사의 인원도 점점 늘어갔다. 널널했던 두 번째 사무실은 이내 또다시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회사 안에 숨 쉴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딱히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내 눈에는 이 공간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회사 내 각종 화이트 노이즈, 회의하는 우렁찬 목소리, 배달 음식 먹은 후의 음식 냄새 등등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많은 것들이 내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어서 빨리 2개 층을 쓸 수 있는 곳으로 옮겨 한 층은 사무 공간으로, 한 층은 회의 및 휴게 공간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혼자 조용히 사무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입주해 있는 사무실 규모로 한 개 층을 더 임대하면 임대료가 거의 600~700만원으로 껑충 오르게 된다. 워낙 셈이 빠른 편인 나는 바로 결론을 내렸다.


한 달 700만원 임대료를 낼 바엔 사옥을 매입하자. 40억 대출 → 연이율 최대 3% → 1년에 이자 1.2억 → 월 1000만원. 이런 계산이 머릿속에 파바박 하고 스쳐 지나갔다. 5층짜리 건물이면 2개 층은 우리가 쓰고 3개 층은 임대가 가능하니, 1층에 200만원씩만 받아도 월세로 600만원이 충당 가능하고, 오히려 우리는 월 400만원 정도만 내면 2개 층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약간의 변수와 기타 경비를 생각하더라도 월 6~700만원의 임대료보다는 사옥 매입이 백배는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거래 은행에서도 부지점장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사옥 매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중간에 정말 우연한 기회로 중소벤처진흥공단에서의 시설자금대출도 받을 수 있게 돼서 전체 평균 이율은 2% 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다시 한번 중소벤처진흥공단 및 정부에게 감사) 여기까지는 꽤나 순조로웠다. 때는 2019년 12월.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불과 2개월 전. 두둥!


모든 일을 다 혼자서 저질러 논 후에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조용히 알렸다. 함께 기뻐할 거라 생각했던 직원들의 반응이 생각보다는 미지근했다. 회사 자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을지, 사옥 매입으로 인해 충분한 인센티브와 혜택이 줄어들 것에 대한 걱정이었을지, 단순히 이사 가는 게 귀찮아서였을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걱정이 앞서는 직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 계획대로 잔금을 치르고, 대수선 리모델링 공사에 대한 계획을 짜고 있던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EP #02. 코로나 팬더믹의 등장


2020년 2월 평화롭던 세상이 샘이 났는지 코로나 19라는 녀석이 불쑥 찾아왔다. 전 세계적인 공황은 잘 모르겠고, 일단 오프라인 이벤트를 업으로 삼는 우리 같은 회사는 그야말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준비하던 일은 다 취소되고, 새로운 일도 기약 없이 연기되고,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벌써 사람을 다 해고했니, 회사가 문을 닫니 하는 소식들이 들려오면서 이벤트 업계는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팬더믹 상황이 오자 나는 더욱 차분해졌다. 마치 이런 일이 올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나름 준비된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의 특징이 돌다리도 수십 번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다. 나는 수십 번 아니라 수백 번도 두들겨 볼 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에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 혹은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를 나름 철저히 해놓았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분석했다. 물론 과학적이거나 물리적인 분석이 아니라 단순한 추측과 감에 의존한 분석이기는 했으나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 즉 현재 가진 현금과 가용 자산, 대출 등으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는지 보수적으로 계산을 하고, 새로운 수익이 언제쯤 다시 창출될 수 있을지 시장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했다.


회사의 예비 자금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은행에서 리모델링 공사의 공사비에 대한 추가 대출과 신용보증기금의 운영 자금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미리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 안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자금 운용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대부분 추가 대출이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면 '건물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게임 업계는 뜻밖의 호황을 맞게 되었고, 이스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 회사에게는 작은 기회가 주어졌고, 언제나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잘'했다. 2020년은 결국 마이너스로 마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EP #03. 코로나가 준 선물


선물 1> 코로나가 나에게 준 선물은 바로 자신감이다. 이벤트/전시/공연/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낸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다. 우리같이 급하게 성장한 회사가 가지는 특유의 취약점이 있는데, 코로나라는 역사상 최고의 위기 상황을 큰 동요 없이 똘똘 뭉쳐 극복해 낸 경험은 아마 앞으로도 우리 회사가 가지는 가장 큰 경험과 자산이 될 것이다.


선물 2> 처음 사옥을 매입하면서 주변 지인 및 협력 회사들에 입주 의사를 물었다. 조건은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win-win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은 어설픈 욕심 때문이었다. 일부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다. 정상적인 임대료를 받아서 회사의 수익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 아주 타당한 의견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서로 간의 도움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문 닫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홍대에도 사무실 공실이 많이 생겼지만 우리 건물은 공실 없이 잘 버텨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은행 이자 및 고정 비용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선물 3> 게임 업계가 활성화되면서 게임사들은 소비자에게 보답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예전처럼 오프라인 대회를 원활히 개최하지 못하니,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소비자 이벤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모 게임사와 게임 전문 방송사에서 연간 운영되는 게임 전용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기로 하고 찾던 중 우리 건물 지하에 있는 그늘 스튜디오에 전문 게임 스튜디오를 만들기로 하고 2년 계약을 맺었다.


당초 그늘 스튜디오는 공연과 방송, 촬영, 전시 등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명, 음향, 영상을 설치했다. 하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거 아니냐는 약간의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깔끔한 공간과 장비로 인해 높은 임대료와 행사비용으로 2년 계약을 체결하고 10명의 직원을 추가 채용했으니, 도망간 줄로 알았던 말이 야생마를 데리고 돌아온 새옹지마의 주인공 영감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이 모든 게 다 코로나의 덕분이다. 코로나가 '작용'을 했으나, 그 '반작용'의 혜택을 받았으니 코로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그동안 고마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제발!

회사 신사옥 사진 (작가의 사진이어서 과장 및 포샵 주의)
회사 신사옥 사진 (작가의 사진이어서 과장 및 포샵 주의)
코로나로 인해 탄생된 게임 스튜디오


코로나로 인해 탄생된 게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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