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엠 저리킴 Sep 02. 2021

[투.숏.톡 04] 상대적 게으름뱅이

최상급 부지런한 아내와 살다 보니

투머치토커의 짧은 글 쓰기 연습 4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제 브런치의 구독자이기 때문에 극도로 아내 이야기를 꺼리고 있지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최대한 짧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원래 우리 회사는 10시 출근 18시 퇴근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서는 러시아워를 피해 11시로 출근 시간을 옮겼다가 아예 재택근무제로 바꿔 버렸다. 팀별로 꼭 필요한 날만 회사에 나와서 근무하고, 최대한 빠르게 퇴근을 시키고 있다. 팀별 이슈가 다양하게 있다 보니 부득이하게 나는 매일 나온다. 법인 사옥을 누가 업고 도망갈까 봐 걱정돼서 매일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들 보통 11시가 넘어서야 회사에 도착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 있게 집에서 나와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7시에 맞춰놓은 알람으로 깬 적은 한 번도 없다. 항상 6시~6시 30분이면 무조건 눈을 뜬다. 절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고, 30대에도 늘 그런 패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엄청 부지런하다고 평가한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내는 부지런함의 끝판왕이다. 물론 지금은 전업 주부 생활을 한지 오래되었지만 한참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 시절에도 이 부지런함의 대명사였다. 항상 출근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먼저 출근해서 각종 공용 공간과 자리에 대한 정리 정돈을 하고, 출근 시간에 맞춰 업무를 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전업 주부인 지금도 아내는 보통 새벽 4시~5시 사이에 기상을 한다. 알람은 늘 6시에 울리지만 잠든 상태로 알람을 맞이해 본 적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밀려 있던 집안 일과 밥&반찬을 준비해 놓고는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올 때쯤이 6시~6시 30분쯤이고 나는 그즈음에 일어난다.


온갖 집안일과 산책까지 마친 아내는 이미 오전 근무를 마친 셈이다. 그제서야 일어나는 게으른(?) 남편에게 찌릿 신호를 준다. '6시 전에 일어나서 강아지 산책 같이 나가자니까 왜 매번 늦게 일어나는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실제로 아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으나 나 스스로 찔려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매사에 꼼꼼한 나는 집에서 상대적 덤벙거림이 심하다. 화장실 불을 켜고 나온다던지, 드라이기를 사용하고 콘센트 개별 전원을 끄지 않는다던지 하는 심각한 건망증으로 늘 잔소리를 듣는다. 에어컨 온도를 29도 아래로 내려본 적이 없으며, 겨울 실내 온도는 늘 17도에 맞춰져 있었다. 올 겨울에는 살림에 다소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부터 실내온도를 18도로 플렉스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 부지런함과 꼼꼼함, 근검절약 정신으로 인해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시드머니를 모을 수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30살에 서울 변두리 21평 주공아파트를 매입했고, 41살에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빚을 지면 무조건 갚아야 하는 욕구가 차오르는 아내 덕에 늘 초고속으로 갚아 나갔다. 무려 15년 넘는 시간 동안 딱 한 번의 이사를 한 건 오로지 아내의 공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게으르고, 상대적으로 헤프고, 상대적으로 덤벙거리는 사람으로 평가받아도 나는 전혀 상관없다. 나는 게으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남부터 결혼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내와의  스토리를 소설의 형식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 취지에 맞게 요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상대적 게으름뱅이, 상대적 낭비쟁이, 상대적 덤벙쟁이의 변명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사람으로 인해 빛이 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