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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Oct 21. 2021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자의 뼈아픈 고백

나는 분명히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기존에 내가 알던 표준적인 모델의 대표들, 그동안 내가 겪어왔던 수많은 안하무인 대표들, 자신의 안위와 복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대표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부 사람들의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그런 대표들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회사, 지금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빠르게 진화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지난 5년간 그 약속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고, 직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성대결절을 얻을지언정 최소한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최근 2주일간 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사실이 모두 나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로 그들의 마음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2016년 창업 당시 힘들었던 2년간 함께 고통을 감내해주었고, 2018년부터 시작된 회사의 폭풍 성장에 함께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회사는 최선의 보상을 해줌으로써 기존 회사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심어주었던 것 까지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그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20년 연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19로 인해 1년간 모든 직원이 맘고생, 몸고생을 겪었지만 결국 회사는 3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래도 회사는 1년간 고생한 직원들에게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정 금액의 특별 상여금을 지급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어려운 시기에 월급 안 밀리고 잘 나오는 데다, 특별 상여금까지 주는 회사 없다며 직원들 모두 즐거워했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바빠진 일정에 다들 많이들 지쳐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좋았던 기억은 사라지고 불만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충분히 서로의 어려움을 잘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이 믿음은 조금씩 상처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들이 이 와중에 불평을 한다는 게 충격적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나 다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100%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소통을 했으면서도 그 마음의 정도를 내가 몰랐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나는 충분히 소통하였고, 공감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아주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은 조금씩 가슴속에 묻어 놓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우리 직원들과 회사는 최대한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고 방어해왔는데,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받는 충격은 실로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아팠다. 


매일매일 글쓰기를 하다 문득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그동안 내가 했던 수많은 글들이 다 가짜 글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 이상 글을 써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2주 동안이나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또 다른 여러 건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진 것도 영향이 있지만 가장 나를 힘들게 괴롭힌 것은 바로 이 사건이었다. 나는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것들이 모조리 틀린 답이었을까. 그 수많은 고민과 번민을 통해 쌓아 온 이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직원들을 탓하는 글이 아니다. 나의 설계가, 나의 신념이, 나의 철학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빠진 것뿐이다. 지금까지 나의 허접하기 짝이 없는 그 구멍가게 회사가 지금의 외형을 갖추기까지 개똥철학이 지탱해 준 것이라고 자부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냥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이루어진 결과이고, 앞으로 나의 운에 따라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많은 고민거리들과 함께 뒤섞인 머릿속을 하나씩 차분히 정리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점검해보는 중이다.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어느 부분부터 이상의 징후가 생겼는지 나 스스로부터 돌아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검토해보려고 한다. 지금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기존에 내가 했던 이야기들이 전체 부정되는 것은 아닐 터이니 기존의 글들을 그대로 두고, 앞으로 또 새로운 생각과 철학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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