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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30. 2020

벤츠보다 카니발

수입차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서른 즈음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잠시 만화방을 하던 시절에 출퇴근이 너무 불편하여 내 인생 첫차 모닝을 구입했다. 만화방을 접고, 큰 마케팅 회사에 재취업을 하여 팀장이 되고 바꾼 두 번째 차가 스포티지였다. 다음 20명 정도의 회사 스타트업 멤버로 참여했을 때, 회사에서 마련해준 세 번째 차는 싼타페


이 회사에서 마음 맞는 후배들과 함께 소규모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의 네 번째 차도 역시나 싼타페였다. 이제 처음 시작하는 회사이니만큼 법인차로 싼타페도 정말 감사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난의 시기를 간신히 이겨내고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2년 전에 내가 타던 싼타페 차량을 창업 멤버인 팀장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차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차에 관심이 많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아마 90%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나머지 10%에 내가 속한다. 나는 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차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남들이 흔히 하나씩 가지고 있는 워너비카나 드림카도 없다. 그야말로 차는 그저 운송수단일 뿐, 나의 욕망이나 신분을 대변해주는 매개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른 새로운 차가 바로 카니발 리무진이다. 일 년에 몇 번씩은 본가의 부모님이나 처가의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움직이려면 최소 6명이 탈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또한 회사 직원들과 여럿이서 미팅을 가야 할 때나 행사를 위한 짐을 싣고 이동해야 할 때 매우 유용한 점이 선택의 기준이 됐다. 그래서 카니발을 선택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심지어 리.무.진.이라니.. 


회사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보니 주변에 여러 대표님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 대부분 우리보다 업력이 오래된 회사들이기는 하나 회사의 규모로만 놓고 보면 우리가 가장 빠르게 성장했고, 직원의 수나 매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어느 모임에 가던 국산차는 언제나 나 혼자 뿐이다. (일명 나혼자탄다. made in KOR)  

 


(잠시 여담) 차만큼이나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가 바로 명품 브랜드이다. 옷은 이쁘면 되는 거지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스티드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같은 디자인의 옷을 10벌 정도 산 적도 많다. 하도 같은 옷을 며칠에 걸쳐 입다 보니 외박을 했냐는 오해를 받은 적도 많았다. 



주변에서는 내 차를 보면서 매번 잔소리들이다. 언제까지 카니발을 타고 다닐 거냐고, 아니면 집에 세컨드카가 따로 있고, 남들 앞에서는 보여주기 용으로 카니발을 타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반농담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한 번은 프리미엄 신용카드에 나오는 호텔 무료 발레 이용권이 있어서 신라호텔에 갔다가 호텔 입구에서 십 분이 넘게 발레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아마도 발레 요원들이 내 차를 '타다' 차량으로 오해를 하지 않았나 싶다. ^^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계속 국산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첫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차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하고, 브랜드의 중요성이 나에게는 절대적인 선택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주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이다. 항상 자금이 부족하고, 회사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도 고급차에 해외 골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되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야 할 목표지점에 아직 절반도 오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이다. 이른바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하면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러한 욕심과 욕망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아직 갈 길이 먼 우리에게 공격만큼이나 수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도록 리마인드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함께 가고 있는 직원들 중에는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을 고려하고, 눈 앞의 리스크를 직시하며, 더 큰 비전을 그리기 위해 샴페인은 잠시 미뤄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원들의 노고를 완벽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고, 연말마다 중소기업 최소 수준의 인센티브와 복지, 배당으로 동기부여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런저런 잔소리와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오늘도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다닌다. 그러는 동안 창업 멤버 2인의 차도 법인 차량이기는 하지만 하나둘씩 수입차(벤츠 1 / BMW 1)로 바뀌었다. 회사 지원 금액의 한도를 정하고 차액은 본인이 부담하는 방식이기는 하나 그래도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직원과 카니발을 타고 다니는 대표의 발란스는 누가 봐도 어색한가 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대신 잔소리이다. 제발 차 좀 바꾸라고. 풉~!


내년 초쯤 되면 새로운 차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들이 거의 취소되는 바람에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이 사실 형편없는 상황이라 큰 욕심을 부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또 올해도 어설프게 좋은 성과를 거두어 헛된 욕망의 유혹에 흔들리기 보다는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의 위기 상황에 맞서 싸우는 연습을 하며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기 전에 수입차 한번 타는 날이 오기야 하겠지만, 수입차 타는 것에 목숨을 걸 만큼 인생의 우선순위가 아니므로 순리대로 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 바람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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