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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Oct 29. 2020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은 듯

(feat. 일반인의 성대결절 클라스)


유명한 개그맨들이 집에 가면 세상 과묵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댔으니, 집에 오면 그 바빴던 주둥이를 얼마나 쉬게 하고 싶었을 것인가. 이해는 가지만 나에게는 크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한때 개그맨을 꿈꿨던 나도 수다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오버 토킹의 일인자이다. 박찬호만큼 공을 빠르게 던질 수는 없겠지만, 박찬호의 투머치 토킹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듯하다. 말의 총량이 많은 것도 있지만 토크 점유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사실 토크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하튼 팩트는 그러하다.


한 번은 클라이언트였던 형님과 도넛 가게에서 시작하여, 아이스크림 전문점과 카페에 이르는 3차에 걸친 토크 대장정을 non-알코올로 5시간에 걸쳐했던 적도 있었다. 또 한 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자 후배와 단둘이 자차로 이동을 하며 5시간 반에 걸친 드라이브 토크를 마친 뒤, 부산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모여 저녁과 함께 4-5시간을 인저리 토크를 했던 경험도 있다. 이 외에도 토크에 관한 에피소드만 꺼내놔도 수백 개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오버 토크의 진가는 바로 집에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전화기 붙들고 목이 터져라 통화를 하고, 지친 몸과 목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하지만 와이프님과 정리 토크에 돌입하면 또 하루 종일 있었던 각종 회의와 통화, 다양한 에피소드를 최대한 요약해서 얘기해도 최소 1~2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히 늦지 않은 시간에 귀가하면 대체로 짧게나마 털고 자야 개운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이해력과 인내심이 많으신 우리 와이프님은 말이 많다고 타박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하게 들어주는 편이다. 결혼 18년 차에 들어서인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도와 가계도를 대략적인 히스토리를 인지하고 있어, 많은 부분의 세부적 부가 설명을 스킵하면서 진도를 빨리 뺄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2시간씩 묵묵히 듣다가도 한 번씩 툭툭 내뱉는 말들에  뼈를 맞은 것처럼 아플 때가 있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토크를 이어가는 편이다. (최근 에어팟의 등장으로 가끔 귀속에 한쪽 에어팟을 낀 채로 눈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종종..)


5년 전쯤인가 그날도 여지없이 운전하며 쉴 새 없이 통화를 하고, 또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목에 좀 피로감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목구멍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老의사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성대결절이네요. 당분간 말을 많이 줄이시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라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가수도 아닌 일반인의 성대결절이 드문 일이기는 하나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며 전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덧붙이며... 지금은 많이 회복이 되었지만 아직도 말을 할 때 미세하게 갈라지거나 노래할 때 고음에 지저분한 노이즈는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듯하다. 


오늘도 시간을 쪼개어 일도 하고, 통화도 하고, 회의도 하고, 수다도 떨고 24시간이 모자라게 열심히 떠들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와이프님과 약 1시간 반가량 아주 가벼운(?) 토크를 마치고, 그것도 모자라 노트북을 켜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ㅋㅋㅋ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보 미안)




사람들은 나를 진절머리 혹은 진저리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내 아이디는 어딜 가나 'zinzery'이다. 이름이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진절머리 나게 말이 많아서 그런 별명이 지어졌으리라 짐작된다. 그래도 사람들한테 크게 미움받지 않고 아직까지 나름 인정받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하는 토크가 아주 영양가 없는 말들만 지껄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판단은 당사자들의 몫으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잘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라고 누차 배워왔지만, 그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특히나 대화에 잠시라도 '마'가 뜨는 것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여기는 사람으로서 말을 줄인 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한 회사의 대표로 5년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말을 내뱉은 것에 대한 책임도 더 커지고 하다 보니 전에 비하면 당장 오늘의 이야기보다는 내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많이 말하면서도 말의 무게감을 잃지 않으며,  점유를 많이 하면서도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 나와 이야기하는 순간이 두려워지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절대 말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눈곱만치도 없는 그런 다짐임을 알 수 있다. end 


>> 다음 읽으실 추천글 : 코로나 19, 의외의 긍정적 효과 https://brunch.co.kr/@zinzery/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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