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민 영웅 시대
(마블 매니아가 읽기에 다소 불편할 수 있음 주의)
작년 이맘때쯤, 코로나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평온한 시절.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의 개봉에 전국이 들썩거렸다. 나에겐 그저 시시껄렁한 또 한 편의 블럭버스터 영화 한 편에 불과했지만 우리 둘째가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어디든 자리에 앉으면 온통 그 어벤저스 & 마블에 대한 이야기라 '아싸'가 되기 싫은 이유도 있고 해서 일찌감치 보기는 했지만 보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너무 재밌어라 하는 둘째 놈 때문에 내색은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 한줄평 : 엄청 퀄리티 높은 할리우드 파워레인저
당시 어느 자리에 가던 어벤저스의 이야기가 빠지질 않고 등장했다. 대한민국에 마블 세계관에 대해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이렇게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애초부터 마블 시리즈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터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마블 시리즈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TMT인 내가 유독 마블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과묵해지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으니..
몇몇의 영웅이 자신들의 능력을 기반으로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고 세상을 구한다는 뻔한 스토리에 현실주의자인 나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슈퍼맨이나 배트맨, 엑스맨, 판타스틱4와 같은 초능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구를 구한다는 히어로물도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영화관에서 가장 처음 본 히어로물이 어벤저스였을 정도이다. (킹스맨도 히어로물 장르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능력이 아닌 현실적인 첩보물의 개념이어서였는지 꽤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 그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세계관이라는 것의 실체가 묘연하기는 하지만 각자 나름의 분석들을 들어보면 꽤 그럴싸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남의 인생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 1등급 오지라퍼인 나로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었다. 내 인생도 복잡하고, 나 스스로에 대한 세계관이나 철학도 불분명한데, 남도 아닌 가상의 세계에 대한 세계관과 철학까지 공부할 여력과 의지가 없었다.
잠시 샛길로 빠져보면, 마블 영화 중에서 스파이더맨이나 앤트맨처럼 같은 영화는 그래도 꽤 재미있게 보기는 했다(물론 극장 말고, 케이블 재방으로). 히어로물임에도 불구하고 우선 재미와 위트가 있고, 사회적 약자가 뜻밖의 능력을 얻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이기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 즉, 유쾌 발랄 히어로 성장기였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계관이 아니라 심플한 성장 스토리.
마블 히어로 영화가 불편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바로 "히어로가 세계를 구한다"는 그 대원칙 때문이다. 그 대원칙을 위해 건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량이 파손되기도 하고, 많은 일반 시민들이 다치기도 한다. 물론 그 히어로들이 일부러 건물을 부수고, 차량을 파손하고, 시민들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히어로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정작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하소연도 하기 어려운 그 장면이 마치 실제 전쟁터에서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피해를 입는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불의에 맞서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또한 "히어로가 세계를 구한다"는 그 대전제 안에는 "소수의 특정 히어로"로 인해 세계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아주 명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마블 히어로 중 일부는 실존 인물을 캐릭터로 만든 경우도 있다.) 오래전부터 미국은 철도왕, 철강왕, 석유왕, 금융왕, 발명왕, 군수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점을 행사하는 거대 재벌이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로 인해 세계의 경제 / 정치 /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이다. 독점으로 인한 대중들의 불편함이나 부당함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유희의 수단을 삼아왔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세계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세계를 자신들의 손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기고문과 YTN과의 인터뷰에서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만든다"라고 말했다. 내가 마블 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꼈던 불편함과 답답함이 이 한 문장으로 완벽히 표현이 되었다. 외국의 사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최소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만큼은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근현대사,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강력한 빌런'이 침입해 올 때마다 특정한 히어로도 아니고, 나라의 높으신 분들도 아닌 바로 시민과 민중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거리로 나오고 그 군중의 힘으로 '빌런'들을 물리친 사례가 수없이 많다.
최근 '코로나 19'라는 사상 최악의 빌런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비롯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정말 타노스처럼 전 세계 인구를 반으로 줄이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뉴스를 통해 유럽, 미국, 중동 등 선진국이라고 자처하거나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들이 이 코로나라는 최강 빌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 코로나에 지지 않고 맞서 싸워 이기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정부, 방역 당국, 지자체,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하나가 돼서 이뤄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위대한 지도자, 강력한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시민이 위기를 극복해 낸 사례로 전 세계에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최소 한국에서는 이런 히어로 중심의 세계관이 잘 먹히지 않을 줄 알았건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어벤저스 : 엔드게임은 1400만을 끌어모으며, 역대 외화 관객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오늘도 여전히 위대한 한국인들은 나라의 어려움에 너 나할 것 없이 자신의 힘을 보태고 있다. 국정 논단 사태 촛불, 검찰 개혁 촛불, 일본 불매 운동 실천, 코로나 방역 협조 등 나라의 위기 상황에는 언제나 자기 일처럼 거리로, 후원으로, 실천으로 나서고 있다. '국난극복이 취미인 나라'라는 말처럼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누군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은 없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져본다.
*사족 : 개인적인 취향은 극한 직업, 보안관, 슬기로운 감빵생활, 멜로가 체질 등 지극히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각색하여 유머 코드로 승화시킨 그런 스토리에 빠지는 편임.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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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어벤저스 회식장면 김밥천국 합성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