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엠 저리킴 Mar 10. 2022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

대한민국 최대 정치 이벤트 : 허망한 결론

한 시간 남짓 쪽잠을 자고서 겨우 눈을 뜨고 창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하늘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새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정겹게 울고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떠들썩한 대화도 여전했다. 마치 밤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평온했고, 고요했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처럼. 밤새 누군가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공허했다. 최소 1600만명의 마음이 나와 같았으리라.


하필 오늘 종합 건강검진 예약을 해놓은 터라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하였다. 건강검진 때문에 어제는 하루 종일 죽만 먹었고, 그나마도 오후 5시부터는 물만 주구장창 먹었기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마 단순히 공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써 휴대폰을 열어 보지 않았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가득할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대기하는 대기실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의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마땅히 도망갈 곳이 없어 꼼짝없이 그 괴로운 뉴스를 강제로 시청해야만 했다.


수면 내시경을 위해 수면 유도제를 맞아야 했지만, 굳이 수면 유도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 밤새 결과를 시청하며 잠을 잔 시간이 고작 1시간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한 게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았지만, 오히려 신경이 더 또렷해지고 잡생각이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계속 코끼리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수면 유도제 때문인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아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눈을 뜨자마자 몽롱한 상태로 급히 휴대폰을 얼었다. 혹시 꿈이 아닐까? 휴대폰 속 뉴스를 보고는 다시 몽롱한 정신이 확 달아나 버렸고, 다급하게 휴대폰을 다시 닫았다.


밖에서 대기하던 아내를 불러 내시경의 결과를 함께 들었다. 거의 10년 만에 하는 대장 내시경과 5년 만에 하는 위 내시경이라 무척 긴장했지만 너무 깨끗하다는 담당 의사의 말에 안도가 되었다. 방금까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던 마음이 고작 이런 일에 안도감이 오다니 참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하다. 그래 나라도 건강해야 또 새로운 싸움에 힘을 보탤 것 아닌가. 오늘까지만 딱 슬퍼하자. 마침 건강검진 때문에 온 몸이 몽롱한 김에 하루만 분노하고, 좌절하고, 슬퍼하자.


누가 대통령이 된 들 사실 당장 나에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주 120 시간 근무, 최저시급 철폐나 월 150만원 근무, 자유로운 해고와 같은 개떡 같은 공약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입장이다. 선제타격을 통해 북한과의 전쟁 위협이 생겨도 민방위까지 끝난 나는 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될 일이다. 또한 노인들에 대한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실한 공약도 당장 나와 내 부모님께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왜 그가 이끌어가는 세상이 죽을 만큼 싫었던 걸까. 그것은 그가 바라보고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자신의 가족과 측근들의 안위에만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들이 어떻게 살건 말건 아무런 관심이 없다. 20대와 30대를 갈라치고, 남성과 여성을 갈라치고, 영남과 호남을 갈라치고, 청년과 노인을 갈라치고, 니편과 내편을 갈라치는 기본적인 심성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고 존중과 배려가 사라진 세상이 된다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이명박근혜 9년도 꿋꿋하게 잘 살아왔고, 그것의 반작용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놓게 된 것도 분명 결과론적으로 보면 잘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작용 반작용 없이 그냥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이끄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 작은 소망일 뿐이었는데, 그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어제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이제 나는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잘 버텨보자. 다음엔 절대 실수하지 말자. 이번이 최선의 간절함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엔 이보다 더 간절하고 처절하게 악착같이 목숨 걸고 지켜낼 것이다. 딱 오늘까지만 슬퍼하고, 분노하자.


■ 공일오비 : 모든 건 어제 그대로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NFYVpe2TeHw





매거진의 이전글 갈등을 외면하지 않는 리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