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정치다 02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밸런스 게임>이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극단적인 설정의 질문을 통해 선택의 고통을 주는 방식의 게임이다. '부먹 vs 찍먹', '짜장 vs 짬뽕'과 같은 취향에 대한 문제부터 '똥맛 카레 VS 카레맛 똥', '토마토 맛 토 VS 토 맛 토마토'와 같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운 엽기적 질문들이 단골 메뉴이다. 상대의 취향을 알아내기 위함이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밸런스 게임은 언제나 옳다.
이 밸런스 게임을 과연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이다. 우리의 인생은 아주 정밀한 시계 부품처럼 모든 결정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 '짜장 vs 짬뽕'처럼 하나를 선택하면 거기서 끝나 버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것이다.
가령 이사를 가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아파트 vs 단독주택'과 같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 이사 갈 집의 형태와 시기를 결정하고, 조건에 맞는 집을 알아보고, 그 집을 계약하기 위한 자금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한 내가 살고 있던 집에 새로 들어올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 집과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이사라는 것은 혼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가구가 연쇄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행위라 중간에 한 집만 계획이 틀어져도 엄청나게 많은 집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인생도 그럴진대, 정치라는 행위는 더더욱 복잡하고 정밀한 조율을 필요로 하는 선택과 협상의 종합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끝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한 후보가 청년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서 받은 질문이 화제가 되었다. "후보님은 부먹 찍먹 중에 어떤 걸 선호하시나요?"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서 국가의 각종 난제를 해결해야 할 대통령 후보를 모신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밖에도 "대전지검에 근무할 당시 맛집을 소개해주세요"를 비롯 좋아하는 음악, 대학 시절 학점, 동아리 활동 등 대부분 신변잡기식 질문이 주를 이뤘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나 국가 비전에 대한 질문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제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보를 위한 작은 배려(?)였을까?
또 다른 후보가 기자들과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러 기자들로부터 "미국과 중국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나라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미국 주도 안보 협의체인 '쿼드'와 통상 협의체인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에 우리나라가 가입해야 한다고 보는지 yes or no로 말씀해 줄 수 있는지 부탁드린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중 누구를 먼저 만날 생각인가요"와 같은 2지 선다의 문제를 잔뜩 받게 되었다. 이에 후보는 "yes or no 혹은 OX 문제는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요즘 이런 게 유행이더라"라면서 "국가 경영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제3의 선택지를 연구해야 한다. 모호함을 피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던데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국가는 항상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장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연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다른 국가에서 우리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외교적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논란이 되었다. 전승절 행사는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여하여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서방 국가에서는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 예민한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으로 국내는 물론 서방 국가에서는 유감을 표명하여 외교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2016년에는 미국 원거리 방어 체계인 사드를 배치하여 중국으로부터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받게 되면서 한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처럼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은 하나를 선택했을 때 다른 것을 잃을 수도 있기에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권자의 식견과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회피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2019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의 강제 징용 관련 전범 기업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일본의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가 내려지게 되었다. '불화수소를 포함한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26개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경제 제재 조치에 굴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과 발 빠르게 대응하여, 3대 수출 금지 품목에 대한 국산화를 조기에 완성하여 수출 규제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시켰다. 한국의 국민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자발적인 'NO JAPAN 운동'을 시작하여 각종 전범 기업이나 한국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한 기업의 물건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일본 여행의 급격한 감소로 대마도와 같은 관광 지역의 경우 관광 매출이 95% 이상 줄어들어 엄청난 타격을 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처럼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혹은 선택을 하지 않고 제3의 답을 찾을 것인지, 선택하지 않고 다른 국가에서 우리를 선택하게 만들 것인지 등 정치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열어 놓고 가장 국가의 이익에 우선하는 정답을 조심스럽게 찾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그 국익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일 수도 있고, 국가의 위상일 수도 있고, 미래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정밀한 사고 체계가 국가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자격을 갖춘 국가 지도자를 선택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