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도라지 요리에 도전 <도라지 차 & 도라지 구이>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가 전업 주부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리에 소질이 없다. 아주 간단한 수준의 레시피도 내가 손을 대면 늘 애매한 맛으로 바뀐다. 그래서 요리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고, 옆에서 최대한 거들어 주거나 말 벗이 되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편이다. 특히 가장 잘하는 일이 중간중간 간을 보면서 이래라저래라 (목숨을 걸고) 훈수두기이다.
지난주에 아버지가 손수 캐신 도라지라며 한 움큼 담아 주셨다. 전에는 도라지 무침 같은 걸 해서 받아먹은 적은 많지만 생도라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일단 주셨으니 받아서 집으로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마땅한 요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주로 도라지청, 도라지차, 도라지 무침 정도의 음식이 나왔고, 간간히 도라지 구이 레시피도 눈에 띄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반은 성대결절에 걸린 내 목을 위해 도라지차를 끓이기로 하고, 나머지 반은 도라지 구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도라지를 까야했는데, 도라지 까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용 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칼로 일일이 까야하고, 잔뿌리 등을 걷어내는 과정들이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힘겨운 도라지 까기가 끝나고 물기를 최대한 빼고 먹기 좋게 도라지를 얇게 저며서 햇빛에 말렸다. 말린 도라지와 대추, 배, 생강과 함께 압력솥에 넣고 오랜 시간 팔팔 끓여 몸에 좋고 먹기 좋은 도라지차가 완성되었다. 도라지의 쓴 맛이 조금 걱정되었으나 배와 생강에서 나온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달콤 쌉싸름해진 도라지차를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도라지 구이에 도전했다. 준비할 재료는 <도라지 / 고추장 1큰술 / 고춧가루 반 큰술 / 간장 0.5큰술 / 물엿 1.5큰술 혹은 갈은 배 반쪽 / 다진 마늘 0.5큰술 / 다진 파 조금 / 다진 부추 조금 / 참기름 / 깨 / 구운 소금 약간>을 기본으로 각자 입맛에 맞게 조금씩 다른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
가장 먼저 깐 도라지를 적당한 두께로 저며서 방망이로 두들겨 얇고 넓적하게 편 후, 소금물에 담가 쓴 맛을 조금 제거한다. 기다리는 동안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물엿, 배,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장을 만든다. 먼저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도라지를 살짝 익힌 뒤, 준비한 양념장을 발라 약한 불에 다시 골고루 굽는다. 다 구워진 도라지 위에 곱게 다진 파와 다진 부추, 깨를 뿌리면 완성!
보통 더덕은 구워 먹고, 도라지는 무쳐먹는 게 일반적인 방법인데, 도라지를 더덕처럼 구워 먹으니 특유의 쓴 향은 전혀 없고, 고소한 맛과 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어마어마한 밥도둑으로 변신했다. 딱히 많이 먹지 않을 것 같아 도라지를 예의상 조금만 받아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받아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