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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Apr 14. 2022

인생은 홀덤처럼

텍사스 홀덤에서 얻는 삶의 교훈

코로나 이전 해외 프로젝트가 많았던 시절에는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반드시 현지의 카지노에 종종 방문을 했었다. 보통 딱 정해진 금액만 들고 가서 다 잃으면 미련없이 돌아오기 위해 가급적 신용카드도 숙소에 놓고 갔다. 카지노에서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텍사스 홀덤이지만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홀덤의 특성상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나는 멀찌감치 구경만 하다 결국 블랙잭이나 바카라처럼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종목 위주로 게임을 하며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코로나 시대에 해외 행사도 사라지고 외부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어 모바일 홀덤 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당연히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사이트이다. 말하자면 한게임 고스톱처럼 돈으로 게임 머니를 사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실제 현금화만 하지 않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렇게 홀덤 사이트에 입성하여 하루하루 게임을 즐기며 인생을 배우고 있다. 단순한 게임 하나에 무슨 인생까지 거론하나 싶겠지만 오늘은 내가 홀덤을 하면서 순간순간 깨닫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홀덤이라는 종목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보자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븐 오디와 비슷하지만 공통의 5장에 개인이 들고 있는 2장의 카드를 조합하여 가장 높은 패를 겨루는 방식이다. 지역에 따라 홀덤의 룰이 조금씩 상이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세븐 포커와 족보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하이카드 → 원페어 → 투페어 → 트리플 → 스트레이트 → 플러쉬 → 풀하우스 → 포카드 → 스트레이트플러쉬 → 로얄스트레이트플러쉬 순이고 동일한 타이틀일 경우 높은 숫자를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된다.


세븐 오디는 참가자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7장을 들고 있으므로 변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홀덤은 공통의 5장을 공유하고, 2장만으로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상당히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어 훨씬 쫄깃하고 많은 반전의 결과가 벌어지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주로 세븐 오디를 많이 했었지만 이제는 홀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약간 어른들의 게임 같은 느낌이랄까?)


원활한 설명과 이해를 위해 간단한 용어들을 먼저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자신이 가진 2장의 카드가 [핸드]이다. 핸드를 2장 받은 상태에서 1차 베팅을 한다. 베팅이 완료되면 공통 카드 3장을 받는데 이것을 [플랍]이라고 한다. 플랍 상태에서 다시 2차 베팅을 한다. 다음에 받는 1장이 []이다. 이때 3차 베팅을 한 후, 마지막으로 받는 카드가 [리버]이고 최종 베팅을 한다. 플랍과 턴, 리버 순서로 오픈되는 카드의 과정을 []이라고 하는데 '런이 좋다'는 말은 '뒷패가 잘 붙는다'라고 이해하면 된다.



보잘것없는 핸드지만 착착 감기는 RUN

받은 핸드가 너무 볼품없을 때가 있다. 모양도 다르고, 숫자도 다른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2+7♣'이나 '3+8♠'처럼 중간에 숫자가 들어와도 스트레이트가 될 가능성이 낮거나 플러쉬를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포기하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분명 어중간한 핸드로 크게 비전이 없었지만, 잘 버티면서 기다리다 RUN이 잘 따라붙어 최강의 패가 되는 경우도 아예 없지 않다. 34핸드 혹은 3페어 핸드와 같이 아주 약한 핸드로 시작해서 최대의 결과값이 나오는 경우가 이렇게 가끔씩 나오기도 하지만 확률적으로 매우 낮기 때문에 베팅 금액이 높을 경우 과감하게 죽는 것이 일반적이다.  

[34 핸드에서 턴에 34567 스트레이트로 변신]
[3페어 핸드에서 플랍에서 한방 3포커로 대변신]

우리의 삶은 늘 약한 핸드가 손에 쥐어져 있다. 금수저나 타고난 천재적 재능이 있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 약한 핸드를 들고 어떻게든 버텨나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매우 작고,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진 자원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항상 훈련해야 한다. '낄낄빠빠'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돈키호테처럼 들이댔다간 초장에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Go & Stop!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인 가운데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우리는 항상 고민해야 한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처럼 고민이 길다고 항상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치 앞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자신만의 원칙이 필요하다. 매번 고민을 할 필요 없이 큰 원칙을 정해놓으면 고민의 크기가 많이 줄어든다. 설령 원칙대로 했다가 실패를 하거나 혹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말고, 새로운 원칙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된다.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한정된 자본과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번번이 깨지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무모하게 도전을 하는 것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깨지면서 원칙을 만들고, 수정해 나가면서 우리만의 룰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버티던 와중에 크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핸드가 손에 쥐어졌다.


* 3+3 (3 원페어)


그리 높은 핸드는 아니었지만 느낌이 좋았기에 과감하게 올인 베팅을 했다. 사실 회사의 상황이 썩 좋지 않았기에 그저 트리플 정도로 소소하게 먹기만 해도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로 판에 참여했다. 당시 먹고사는 문제로 주어지는 일들을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 않고 다 뛰어들다가 거의 에너지가 방전이던 상태였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주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참전을 하고 말았다.


* 3+3/ Q+3♠+3♣ (3 포카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플랍에서 이미 한방에 포카드가 완성이 되었다. 분명 소박한 기회를 바라며 시작했고 주어진 일에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행사부터 잭팟이 터졌다. 대회는 엄청난 규모로 커졌고 그 대회 하나로 회사의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을 정도로 매출이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은 좋아하긴 이르다. 샴페인을 터트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3원페어일 뿐이니 거기에 맞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조용히 이불속에서만 혼자 웃어야만 했다.


결국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우리는 완전히 다른 회사로 거듭났다. 변방에서 허드렛일만 하던 회사에서 단번에 메이저급 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만하지 않고 그 기회를 발판 삼아 조금 더 공격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조용히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중간에 몇 차례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훌륭한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어려운 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허튼짓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홀덤 플레이를 하면 가끔 좋은 일도 생기게 될 것이다.

최근 2일 동안 온라인 홀덤 토너먼트 우승 기록


강력한 핸드이지만 볼품없는 RUN

이와는 정반대로 핸드에 AA가 KK같이 강력한 페어가 들어오면 누구라도 흥분 상태가 된다. 홀덤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핸드이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승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내 패는 원페어로 마르고, 상대방이 투페어나 트리플로 이기는 일은 플레이를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AA를 들고 이긴 게 더 적은 것 같은 이유는 졌을 때 기억이 강렬해서일까?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집안이 부유한 금수저도 있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도 있다. 나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산이던 재능이던 하다못해 얼굴이던 뭐라도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온 이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홀덤에서 AA나 KK를 들고 시작하는 사람이나, 100미터 달리기에서 10미터쯤 앞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해피엔딩을 맞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엄청난 재산을 하루아침에 탕진하는 사람도 보았고, 재능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여 결국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도 보았고, 얼굴 믿고 까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숱하게 보았다. 물론 출발선에서부터 어드밴티지가 부여되니 남들보다 확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낮은 확률로 실패를 했을 때의 대미지가 남들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회복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내가 AA나 KK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건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매일 부러워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세한탄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낼 것인가. 소박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이들의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도 어찌 보면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는데 겸손하고 성실하게 노력까지 열심히 한다면 그 사람을 이겨낼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일단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그 마음을 빙의해서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확률적으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성취감과 희열감이 더 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한 게임이 엄청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명승부가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이 판에서 나는 초반에 일찌감치 폴드를 하고 '팝콘각'의 자세로 경기를 관람했다. 내가 홀덤을 하면서 경험한 가장 치열한 경기가 분명하다. 물론 처음부터 타인의 핸드를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가 종료된 이후에나 이 모든 반전의 과정을 알게 된 것이다.


플랍 세장이 'A + K + 6'로 떨어지면서 각각 K원페어 / A원페어 / 6트리플이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상이몽을 하며 서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6원페어를 들고, 6트리플이 된 플레이어는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턴에 'K♣'가 떨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K원페어는 K트리플로, A원페어는 A투페어로, 6트리플은 6풀하우스로 각각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었다. 세 명 모두 상대방의 패를 모르는 상황에서라면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정도로 각각 높은 카드가 맞기 때문에 승부는 좀 더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마지막 리버에 'A'가 떨어지면서 이 엄청난 명승부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세 명이 모두 풀하우스가 되었지만 누구도 서로의 패가 풀하우스인지 알 수가 없도록 숨겨져 있기 때문에 패를 오픈하기 전까지도 모두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 예측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세명 모두 풀베팅으로 올인하면서 패가 오픈되었고, 최종 A풀하우스가 승리를 거머쥐며 대미를 장식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홀덤을 하면서 이렇게 명승부를 본 기억이 없다. 특히 동시에 3명이 각각 다른 풀하우스를, 그것도 숨겨진 풀하우스로 마지막까지 엎치락 뒤치락하는 경우는 엄청나게 진귀한 장면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20대에는 남들이 다 나보다 모두 앞서가는 것 같고, 30대에는 몇 명의 특출 난 인물들이 부러울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나의 20-30대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묻혀 뒤쳐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40대에 와서야 회사를 시작했지만 우리의 시작도 그렇게 화려하지 못했고 오히려 1-2년 안에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 시간들을 가능성 하나만 보면서 버티고 버티면서 노력했더니 천금 같은 기회가 와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만약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마 나는 성공한 삶이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제 고작 절반 정도 지난 상황이므로 섣불리 현재를 단정할 수 없다. 엄청난 위기가 올 것이고, 또 엄청난 기회가 올 것인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잘 옥석을 골라내고 지속적인 성공의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현재의 나를 부러워하던 나의 후배가 어느 순간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갈 수도 있고, 현재의 나는 지금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퇴장할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적절한 행운과 기회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노력만으로, 행운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핸드)을 다하고 적당한 행운()이 따라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다 하다 홀덤까지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해석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쿨하게 그렇다고 인정한다. 세상의 모든 작은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의 성격상 가장 많은 가르침을 홀덤으로부터 받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놀이를 넘어서 한판 한판에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고 있다. 혹자는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거나 축구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홀덤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실패를 실제 현실의 결정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고, 그게 와닿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 보너스 플레이 : 스트레이트플러쉬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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