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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Apr 18. 2022

공공의 적 - 엄친아

엄마친구아들, 엄마친구딸 그 미지의 존재에 관하여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비교되는 일에 익숙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엄마 친구의 아들이나 엄마 친구의 딸은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이다. 무엇 하나 못하는  없는 천하무적의 능력을 가진 그런 천상계의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생각해본  없으나 최근에서 생각해본 바에 의호면  그런 넘사벽의 엄친아, 엄친딸 친구 중에는   명도 없었을까? 확률적으로 생각해봐도 친구가 50명이면 그중  명정도는 엄친아여야 하는데 수많은  친구 중에 엄친아는  명도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항상 같은 대답이다. 그러니 엄친아는 혹시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


그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엄친아 현상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엄마 주변에 있는 수많은 친구 아들 중에는 공부 잘하는 아들, 운동 잘하는 아들, 얼굴 잘 생긴 아들, 싹싹한 아들, 머리가 좋은 아들, 좋은 직장에 들어간 아들 등이 각각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의 머릿속에서 그 모든 능력치들이 하나로 합체되어 상상 속의 슈퍼 히어로가 탄생을 하고, 그에 반해 내 자식만 못난 것 같은 자격지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게 중에는 진짜 모든 능력치를 한꺼번에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없지 않을 테지만 최소 내 주변에서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남의 자식들이 아무리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상대적으로 내 자식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도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당연히 자기 자식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그 걱정과 우려의 마음이 '잔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자식들의 고막을 때릴 것이며 나아가서 애정 어린 마음을 가득 담아 강력한 '등짝 스매싱'을 시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자식 잘되라고 하는 소리임을 알기에 무심하게 흘려듣다가도 한 번씩 서러운 마음에 소심한 반항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라 뜨거운 귓방망이일 뿐이다.

 



어릴 적에도 우리 부모님은 그랬지만 사실 크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으시다. 기억에 꼽을 만큼 드물게 했던 몇 번의 잔소리 외에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하는 대로 최대한 놔두시는 편이었다. 맞벌이로 자녀 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나는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정말 운 좋게도 서울에 있는 홍익대학교에 턱걸이로 합격했다. 학교에서 가서도 공부보다는 학교 생활, 친구 관계에 더 집중할 때도 크게 뭐라 하신 적이 없었다. 항상 '니가 알아서 잘하겠지'였다. 스스로 한소리 듣겠다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크게 나무라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잘 해왔다. 학원 한 번 안 다니고도 샛복으로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갔고, 과학생회장을 맡아 대외 활동도 열심히 했고,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셨지만 아르바이트도 거의 쉬지 않았고, 좋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빠르게 취직을 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하며 아주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를 둘이나 선물해드렸다. 30대에는 속 썩이지 않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었고, 40대 초반에는 사업을 시작해 5년 만에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며 사옥까지 올리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사실 어머니 친구분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 재수 없다는 엄친아로 불린다고 한다. 어머니의 친구분들 자녀들이 내 나이 또래가 대부분인데 아직 장가도 못 간 자식, 취직도 못한 자식, 아이도 없는 자식, 맨날 부부 싸움하다 결국 이혼까지 하는 자식 등 부모 입장에서 아직도 걱정스러운 자식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내가 살아온 길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자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학이, 취업이, 사업이, 가정이, 자녀가 성공의 절대적 척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전지적 부모님들의 시점에서 본다면 엄친아가 맞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니... 어린 시절의 나로서는 전혀 믿기지가 않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너무 안정적인 모습으로 인정받고 있다. 심지어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어머니 친구분들은 항상 웃상인 내 얼굴조차 훈남이라며 좋아해 주신다. 퍼포먼스의 달인인 나는 가끔 어머니 친구분들을 만나면 완벽하게 좋은 아들 코스프레를 한다. 그게 다 어머니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일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난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내가 엄친아라니! 훗~! (결국 내 자랑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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