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골프화 '징 교체' 도전기
나는 골프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다. 연차로만 따지면 벌써 1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실력은 이제 시작한 초보들과 자웅을 겨룰 만큼 형편없다. 최근에 나갔던 라운딩에서 거의 36 오버를 했으니 100돌이라는 말도 나에겐 과분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1년에 서너 차례 라운딩을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곤욕 그 자체이다. 골프라는 운동이 싫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못 치면 못 칠수록 위축이 되고, 동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구의 경우는 내가 좀 못 치더라도 상대방에게 미안해할 것까지는 없고 돈만 내면 그냥 간단히 해결이 된다. 하지만 골프는 못 치면 돈도 쓰고, 미안한 마음까지 가져야 하는 이상한 운동이다. 물론 연습을 열심히 해서 미안한 실력이 안되면 되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운동이라면 매일 열심히 연습을 할 텐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게 골프의 속성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국내 골프장은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여 어지간한 시간대에는 부킹 자체가 전쟁이다. 그렇다 보니 일단 예약을 하고 멤버를 모으는 일도 부지기수이고, 골프 예약이 일단 잡히면 우스갯소리로 부모님 장례식 아니면 펑크를 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 골프는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골프를 아예 접을 거라면 모르겠지만 올해도 벌써 잡힌 골프 약속만 해도 몇 개나 되기에 이 참에 골프 용품들을 장만하려고 점검을 해보았다.
골프에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 남들에 비해 골프에 관련된 용품들도 특별히 잘 관리하지 않는 편이다. 클럽부터 시작해서 옷, 모자, 신발, 거리측정기, 공, 마커, 티, 가방 등 골프라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오만가지 용품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당구는 큐대 하나만 있어도 끝나는데...) 골프의 완성은 패션이라는 말처럼 웬만한 브랜드 옷은 셔츠 한 장에 수십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나는 골프에 그다지 애정이 많지 않은 관계로 최대한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소비를 하는 편이다. 특히 신발의 경우 13년 전 시작했을 때 샀던 나이키 골프화와 7년 전쯤 폐업 땡처리하는 골프샵에서 산 푸마 골프화가 전부이다.
몇 년째 똑같은 셔츠를 입다가 새로운 PK셔츠도 사고, 쿨 이너웨어와 바지도 하나 장만했다. 문제는 골프화인데 이게 몇 년째 신고 있는 신발이다 보니 바닥에 징이 완전히 다 닳아 없어진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실력이 미천한데, 징까지 그러하니 더더욱 실력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골프화를 하나 장만하려고 알아보다가 새로 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하던 차에 우연히 징을 교체하는 블로그를 보고 나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 되지 않으니 한 번 해보고 잘 안되면 그때 새로 사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이다.
골프화 징 교체 Let's start!
■ STEP 1 : 징 유형 확인 및 구매
골프화에 따라 징의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브랜드라고 해도 제품에 따라 징의 모양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크게 트리락형, 슬림트리락형, 일자형(핀형), 큐락형, 나사형 정도로 구분되는데 일단 신발에 붙은 징을 제거해야 알 수 있다. 내 경우는 지나친 관리 소홀로 인해 운 좋게(?) 2개의 골프화에 각각 1개씩 징이 빠져있어서 유형을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만약 자신의 골프화 징의 유형을 모를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렌치를 먼저 주문하여 유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이키 골프화는 큐락형이었고, 푸마 골프화는 일자형으로 쿠팡에서 검색하니 모두 로켓와우로 새벽배송이 가능한 제품들이었다. 유형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한 후 바로 구매하여 오늘 새벽에 배송을 받았다. 구매할 때 반드시 렌치가 세트로 들어있는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렌치를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렌치의 모양은 모두 같기 때문에 한 개만 주문하면 된다.
■ STEP 2 : 징 제거 (feat. 렌치)
징을 제거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보통 징과 신발 사이에 낀 여러 가지 이물질 때문에 굳어서 잘 제거가 안돼서 힘으로 무리해서 돌릴 경우 징이 부러지거나 렌치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제거하기 전에 미지근한 물에 신발 바닥 부분만 잠기도록 약 30분 정도 담가놓으면 훨씬 수월하게 제거할 수 있다.
물기를 1차 제거한 후 렌치로 구멍 2개에 잘 끼운 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징이 돌아가면서 신발에서 빠지게 된다. 내 13년 차 나이키 신발의 경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징이 흐물흐물해져 제거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천신만고 끝에 모든 징을 제거했지만 이물질이 많이 껴있어서 오래된 칫솔을 활용하여 이물질을 모두 제거한 후 마를 때까지 그늘에 잠시 두었다.
■ STEP 3 : 징 부착 (feat. 렌치)
깨끗하게 정리된 골프화 바닥에 징을 부착하는 일은 훨씬 더 수월했다. 그냥 모양에 맞게 넣고 렌치로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다. 다만 나이키 골프화의 경우 징이 하나 빠진 상태로 오랜 시간 지나서 모양이 변형되는 바람에 징이 잘 끼워지지 않아 손톱 다듬는 줄칼로 한쪽 면을 열심히 갈아서 넣는 정도의 수고가 있었을 뿐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업인데 막상 시작하기 전엔 왜 그렇게 두려움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골프화 징까지 교체했으니 더 이상 핑곗거리도 없다. 오로지 동반자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만 앞으로 앞으로 갔으면 좋겠다. 물론 동반자들에게는 징 교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 핑계라도 대야 할 수도 있으니까. 올해 안에 열심히 하면 100돌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13년 동안 못 이룬 걸 이제 와서 바래서 무엇하리. 그저 골프는 마음을 비워야 하는 운동임을 되새겨 본다.
※ 보너스 컷 : 일요일 오후 나른한 (숏)다리와 (닥)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