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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Nov 19. 2022

경청<이해<공감<분석<빙의

호모 커뮤니쿠스 : 커뮤니케이션의 단계적 진화

호모 커뮤니쿠스(Homo-communicus).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업(嶪)으로 삼은 지 벌써 20주년이 되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선배와 동료, 후배를 만났고, 또 클라이언트와 협력사, 관계사 등 일로 만난 사이가 족히 수백명은 될 것이다. 주니어이던 시절부터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지금까지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연히 철 모르던 시절에야 타인의 마음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오직 내 얘기를 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주 조금씩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해가고 있다.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서 이러한 다양한 단계가 있음을 인지하면 보다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경청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은 바로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단순한 주장에 불과하다. 나는 유명한 투머치토커로서 분명 말을 많이 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듣는 것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단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상대가 말하기나 감정표현에 다소 서투른 경우 그 빈틈을 메우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것이다. 단순히 내 투머치토크를 포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상대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줄임으로서 상대가 이야기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던 간에 상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열심히 들어주는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점이다. 일단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분석'할 수도, '빙의'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이해

모든 대화가 유익한 것은 아니기에 모든 대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와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행위로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빛이 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듣는 것 못지않게 상대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가끔 '네 말이 이해는 되는데, 공감은 잘 안돼!'라고 하는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의 말이 내 신념이나 가치관과는 멀어도 이해는 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이해'의 단계는 그렇게 어려운 단계는 아니다. 나의 가치관까지 버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공감

'공감'이라 함은 그야말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동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경우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드시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상대방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나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에 맞을 경우 우리는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공감'하는 단계가 되면 보다 많은 속 깊은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공감되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최근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일로 만난 지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동안 어찌 된 영문인지 그와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사적인 대화 자리를 갖게 된 나는 절대로 2시간을 넘기지 않겠다는 '허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내 예상을 뛰어넘는 공감 토크의 시간이 이어지며, 2시간 순삭을 넘어 무려 5시간 반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 신념이 나와 너무 비슷하여 몇 번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유익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공감'의 힘은 위대하다.


■ 분석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드물게 아주 솔직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했을 때, 보통은 적당히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대화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분위기, 전후 상황, 심리 상태 등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는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이런 걸 '행간을 읽는다'고도한다. 행과 행사이에 생략된 혹은 압축된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을 하던 초창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당시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필터 없이 들었던 시기가 있다. 사람의 말을 해석하거나 분석할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저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믿었던 시기였다. 다른 사람의 말은 물론 직원들의 말도 그냥 해석의 여지없이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직원들은 좋지 않은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말을 아끼며 그저 내가 공감해주기를, 자신을 분석해주기를 기대했었으나 나는 그럴 정도로 여유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을 찾고 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직원들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분석'을 넘어서 '빙의'의 단계로 넘어갔다.  


 ■ 빙의

일전에도 '빙의' 중독자로서의 삶을 글로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로 나는 심각한 '빙의' 중독자이다. 상대방에 대한 '분석'의 단계를 넘어 상대방의 입장과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단계이다. 그저 단순히 역지사지의 정신이 아니라 피아일체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빙의'의 범위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이나 지인들을 넘어서서 이젠 그들의 직원이나 관계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정말 그 사람의 진심이나 심연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단지 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거나,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서 그 사람 자체가 되어봐야 한다. 내가 만약 '그'라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하면서 그 물음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사실 이 '빙의'의 단계를 수시로 넘나들기 위해서는 아주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유'이다. '여유'라 함은 시간적인 여유, 금전적인 여유, 심리적인 여유를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빙의'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여유'가 없다면 쉽게 도전하기 힘든 영역이 될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내가 회사를 처음 시작하고 자리를 잡지 못해 정신없이 헤매던 시절, 내 스스로의 마음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그때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 업무적인 권한을 대부분 팀장들에게 위임(giving power)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직원들과 지인들에 대한 '빙의'에 착수할 수 있었다. 


'빙의'에 반드시 '여유'가 필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을 기억 어딘가에 고이 저장해 놓을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나의 경험과 그들의 성향 등을 고려하여 복합적인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그중 가장 타당한 가설을 세워보는 과정으로 '빙의'는 진행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를 차곡차곡 잘 분류하여 저장할 필요가 있는데, 여러 가지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다소 무모해 보이고, 무익해 보이는 이 '빙의'의 단계는 과연 왜 필요한가. 한낱 한가한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정신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수많은 '빙의'를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다고 자부하고 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단계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그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것이 만약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문제의 요소를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미리 차단함으로써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결국 신뢰 관계가 두터워지고 오랜 시간 내 옆을 지켜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는 셈이고, 어떤 두려움과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빙의가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고, 내 빙의를 통해서 얻은 결론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인공지능이 아니므로 내 경험과 분석은 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성별(性別)과 다른 세대(世代) 등은 어차피 간접적인 경험이 전부라 분석과 빙의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부족함 조차 인정하고 일정 부분 보정값을 주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더 열심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분석하고, 빙의할 예정이다. 내 성대가 갈아 없어져 쉰 목소리로 살아야 한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내 성대를 바치리라.


'내 친구 회사의 팀장에게까지 빙의하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나밖에 없지 않을까?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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