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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Dec 19. 2022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는 로맨티스트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법칙

나는 로맨티스트이다. 세상의 모든 이별은 항상 슬프거나, 괴롭거나, 불편하지만 나의 이별만큼은 항상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다소 무모한 로맨티스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숱하게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족을 제외하면 평생 누군가와 이별하지 않고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그냥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는 마음을 먹고 있으면 그 이별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헤어지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뜻이 아니라 헤어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라는 말은 불교의 유명한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구절로 사람의 만나고 헤어짐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임을 알려주는 말이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과도 언젠가는 헤어질 수 있고, 도원결의를 맹세하던 동지들도 어느새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을 수도 있다. 평생 내 옆에서 잔소리해주실 것 같던 부모님과도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해야 하고, 황망하게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한다. 그 크고 작은 만남과 이별에 우리가 일희일비하며 매번 슬퍼하고, 분노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이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현재 남은 나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불교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헤어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헤어질 수 있고, 또 떠나간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언젠가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 헤어질 때는 가급적 아름답고 쿨하게 헤어져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기억은 조금씩 희석되기 마련이며, 좋았던 기억은 복리처럼 불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가급적 좋은 이별, 자연스러운 이별을 맞이했을 때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하는 순간에 서로 덜 어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만남을 전제로 한 이별이 있을 리 없겠지만 혹여 낮은 확률로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돌아서는 뒷모습에 충실하라는 의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만남은 더더욱 그러하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세상이다. 이 냉혹한 세상에서 현재 다니는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직원은 한 명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모두 떠나게 되어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회사의 입장만 고집하며, 직원의 뒤통수에 온갖 험한 말과 저주를 퍼붓는 멍청한 리더들이 상당히 많다. 아니, 리더라고 칭할 수도 없는 몰상식한 골목대장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떠나는 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 이 회사가 정말 다니기 좋은 곳이라면 굳이 다른 회사를 찾아 떠나려는 마음을 먹게 될까? 나도 여러 차례 회사를 떠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그 마음을 잘 알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주 최근에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었다. 비즈니스도, 친분 관계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쯤에 걸쳐있던 한 후배의 이야기이다. 그 후배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망설여지지만 내가 왜 그와의 이별을 택했는지 조금이라도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글자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처음 회사를 시작하면서 정말 아무 기댈 곳도 없었다. 투자를 하기로 한 친구는 투자를 철회했고, 일을 기대했던 광고주는 주색에 빠져 나를 이용해먹기 바빴다. 응원한다던 많은 사람들은 이내 나의 무모한 도전을 조금씩 비난하기 시작했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변에 남았다. 함께 시작했던 직원들 조차 나에 대한 신뢰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니 거의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창업 3년 만에 간신히 귀인들을 만나게 되어, 회사는 날로 승승장구하면서 어느덧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 어엿한 중소기업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직원들의 복지 및 인센티브 등 직원들 복리후생에 최대한의 힘을 쓰는 한편 주변에 새롭게 회사를 시작하는 후배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며 나의 경험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기존에 아무도 가지 않은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나의 방식이 언뜻 듣기에는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후배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열정적으로 조언해 주었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멋진 멘토가 돼서 어렵게 시작한 후배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고 멘탈을 단단히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사업적으로나 자금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고 기회가 있고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 경영적인 문제로 인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사람이던 회사던 국가던 좋은 흐름이라는 게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빴던 기운이 한 방에 뒤집어지지 않는다. 후배의 회사는 정말 좋은 멤버들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회가 올 듯 말 듯 계속 애를 태우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 회사의 창업 초기부터 지켜봐 왔던 사람으로서 항상 응원하고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었던 차에, 나의 좋은 기운을 그 회사에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후배 회사의 지분 인수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지분 인수 절차는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회사는 그때부터 조금씩 일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1년 반 만에 어느덧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며 적은 인원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는 거의 없지만 때마침 나의 지분 인수 시기부터 시작된 따뜻한 바람이 결국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진심으로 회사의 성장을 축하해 주었다. 


내가 지분을 가진 회사가 1년 반 만에 폭풍 성장을 했다는 소식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던 찰나에 그 후배는 조심스럽게 내 지분을 다시 인수해갈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유는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그 지분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도 회사 창업 초기에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지분을 증여해주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흔쾌히 그러마하고 답했다. 


"그럼 얼마에 다시 사가실 건가요?"


"대표님 돈 많으시니까 저희 액면가로 다시 매입하고, 대신 제가 소주 한잔 사드릴게요


그 순간 온갖 복잡한 감정이 마음속에 소용돌이쳤지만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엄청난 돈을 바라고 투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투자했던 당시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한 회사의 지분을 액면에 사가겠다(①), 그 이유가 내가 돈 많으니까(②), 소주 한잔 사드릴게요(③). 한 문장 속에 세 번이나 나에게 총질을 했다. 분명 의도한 것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어쨌든 나한테 엄청난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나를 롤모델로 생각했다는 사람이었고, 힘들 때면 나한테 와서 어드바이스를 듣고, 회사에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지분 인수까지 제안했던 사람이 회사가 이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을 때가 되니 황급히 지분을 회수해 가려는 모양새가 분명했다. 


분명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도 똑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왜 그런 말을 이 시기에 했는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지인으로부터 초기 투자금 5천만원을 받으면서 넘긴 지분 10%를 회사가 안정을 찾자마자 10%의 이자를 보태 5500만원으로 찾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방식이 정말 너무 잘못됐다 싶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친한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냥 알겠다고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헤어지고 나서 정말 곰곰이 생각했다. 아내와 심각하게 상담을 했다. 이걸 모른 척 그냥 넘어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잘못된 점을 짚고 넘어가는 게 맞는지에 대해 아주 오랜 시간 상의를 한 끝에 그냥 이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는 것은 그 후배에게도 결국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적어서 카톡으로 보냈고, 이 상황을 돈의 문제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후 몇 번의 답신이 와서 문자를 이어갔지만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사람을 다시는 못 보고 영원히 잃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경영자로서, 사업가로서 이런 아마추어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이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좋아했고, 존경했고,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투자한 돈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럼 세상에 수많은 부자들은 비인간적이고, 냉혈한이라서 투자를 하고 그에 대한 수익과 배당을 받는단 말인가. 오히려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보다 조금 더 챙겨주는 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돈이던, 선물이던, 마음이던, 말이던 뭐든지 상관없이 최소한 다른 사람보다는 더 대접을 받는 상황이 되어야 맞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해봤던 사람으로서 그 회사의 지분가치는 내가 투자했던 당시에 비해 최소한 5~8배는 올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원금의 몇 배를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조그만 정성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럼 나는 그냥 이자는 됐고 원금만 달라고 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을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이후 마지막에 뱉었던 "소주 한잔?"이라는 말이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다. 나의 선의를,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을 소주 한잔에 퉁치려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동안 내가 쏟은 노력과 철학과 노하우를 하나도 흡수하지 못하고 그냥 겉핥기로 듣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실망감에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를 호구로 본 걸까,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판단한 걸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 번이라도 내 입장에서 나에게 빙의해보았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판단이었을지 바로 정답이 나왔을 텐데, 그냥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은 1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고 실패를 통해서, 실수를 통해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번의 실수를 너무 가혹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해보았다. 믿었던 만큼 실망이 더 큰 법이고 그 후배 역시도 나를 너무 믿었기에 나의 이런 태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것을 아끼고 지키려다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이번 기회에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말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과에 관계없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큰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주변 사람들 직원, 동료, 협력사, 선배, 광고주 할 것 없이 두루두루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진정한 경영자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이미지 출처 : 코메디클럽 / 글 : 소심 작가 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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