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Jul 18. 2023

손절의 달인

'손달'이 말하는 손절학개론

나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가 한없이 따뜻하고, 한없이 너그러울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다들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온통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촘촘한 connect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사람을 손절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냥 싫으면 싫은 대로 어떻게든 끈을 연결시켜 놓는 게 좋지 않을까?' '괜히 여기저기에 나의 평판이 나쁘게 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손절을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난 그 어렵다는 것을 곧잘 해내곤 한다. 가히 '손절의 달인'이라고 해도 불릴 정도로 꽤나 여러 명의 손절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어중간한 관계의 사람이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너무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 때 망설임 없이 실행한다. 물론 순간적인 감정이나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상대방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이 되지 않는 경우에 즉각 실행하는 것이다.


손절에 대한 후폭풍은 온전히 나 스스로 감당해내야 한다.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소문을 내고 다니던, 내 명예에 어떤 칼질을 하던, 그런 부분까지 다 감안하고 예측한 후에 진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말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로 지낸 한 친구를 손절했을 때 아내가 내게 "만약 그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에도 연락을 안 할 정도의 각오가 있는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을 했고 실제로 최근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근조화환과 조의금만 보내고, 나는 가지 않았다. (물론 아버님께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조금만 더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가자면, 손절이라고 다 같은 손절이 아니다. 크게 '감정적 손절'과 '상황적 손절'로 구분이 되는데 '감정적 손절'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면서 상처를 반복해서 주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상황적 손절'은 그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게 된 것을 말한다. '감정적 손절'의 경우에는 사실상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다시 손절이 번복되는 일은 없겠지만, '상황적 손절'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오해가 풀리거나 서로에 대한 용서와 이해가 전제된다면 충분히 번복될 여지가 있는 차이가 있다. 


아래 지금까지 있었던 몇 가지 손절의 사례를 통해 '감정적 손절'과 '상황적 손절'이 어떻게 다른지, 그에 따른 나의 대응 방식은 또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례 1 : BR친구 A와의 이별

내 브런치를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나의 BR친구 A에 대해서 자주 들어왔을 것이다. A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홈쇼핑으로 나름 큰돈을 번 친구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지만 친구들이 모이면 항상 A는 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고,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러한 행동이 점점 심해져 갔지만 친구들 누구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듣기 좋은 말들을 남발하며 공짜 술을 얻곤 했다. A와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로서 서로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단둘이 있을 때 나는 A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친한 친구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쓴소리를 아까지 않았고, A도 잘 받아주어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술자리에서 불쑥 나에게 사업제안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투자를 할 테니 독립해서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였고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그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할 직원들 몇 명을 설득해서 시작하려는 순간 A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투자를 철회하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나는 아파트를 담보로 1억의 돈을 빌려 결국 사업을 시작하였다. 처음 2년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A를 원망하지 않았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A는 나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표현하였고 회사에 대한 걱정을 해주었기에 나는 오히려 걱정 말라며 A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흘러 회사는 드디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게 되면서 많은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었고,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A에게 기쁜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A는 정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고 나도 그것이 A의 진심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자신의 부담감이 덜어진 것에 대한 감정 표현이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 투자를 하기로 하고, 이내 투자를 철회하면서 A 스스로가 내게 가졌던 미안함과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우리는 더욱더 승승장구하며 결국 사옥을 매입하게 되었고, 나는 또 철딱서니 없이 A에게 그 사실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하지만 A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 달랐다. 분명 매우 놀라며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묘하게 그것이 1년 전 그 반응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A는 그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나와 가장 멀리 있는 자리에서 다른 친구들과 희희낙락하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순간 깨닫게 된 것이다. A는 1년 전 나의 성공을 축하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부담감을 떨쳐낸 것이었으며, 사옥의 매입을 계기로 나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었음을.


그 뒤로도 여러 번의 모임을 가졌지만 A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회사나 사옥에 대해 묻지 않았으며, 나를 멀리하려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만취한 A에게서 전화가 왔고 술을 산다던 그 친구의 말에 나는 또 순진무구하게 그 자리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나와 오래전에 연을 끊었던 다른 친구가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만남에 우리는 서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A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본격적인 대장 놀이를 시작했고, 둘이 빨리 화해하라며 종용했다. 나는 매우 기분이 불쾌했지만 그 기분을 억누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A는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5분에 한번 10분에 한번 계속 화해하라며 껄껄거리며 웃었다. 


정말 한마디 할까 하다가 술 취한 A에게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집으로 오는 길에 그에게 '손절 선언'을 했다. 카톡으로 전달된 메시지는 다음 날 술이 깨도 읽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전화, 카톡을 모두 차단했다. 그렇게 시간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최근에 A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자리에 결국 나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A는 여러 경로를 통해 나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하고 손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A의 곁에는 조언과 쓴소리를 하는 사람 없이 여전히 대장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사례 2 : 클라이언트 B와의 이별

나의 클라이언트였던 B는 나만큼이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현존하는 사람들 중 나와 유일하게 경쟁이 가능한 수준의 오지라퍼이다. B와 우리 회사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케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회사를 옮기면서 팀장의 역할로 가게 되었는데, 이직을 하기 불과 2주일을 남겨놓고 또 다른 회사에서 합격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당연히 두 번째 회사가 좋은 조건의 회사였기에 B는 결국 팀장의 자리를 고사하고 두 번째 회사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다. 


(나와 쌍벽을 이루는) 우주최강 오지라퍼인 B는 자신이 맡기로 한 팀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C에게 그 팀장자리를 제안했고, 사안이 급한 만큼 C는 바로 면접을 진행했고, 바로 합격 통보가 내려진 것이다. 이에 B는 나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나도 그에 대해서 흔쾌히 동의해 주면서 사건은 쉽게 종료되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 회사 직원인 D도 B의 추천으로 그 회사에 면접을 본 사실이 알려졌고 최종 합격통보를 받으며 동시에 같은 회사로 두 명이 이직하게 된 것이다. C에 대한 이야기는 사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D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서 나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B에게 바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번 C팀장에 대한 건은 서로 공유된 내용이어서 저도 흔쾌히 동의를 했는데, D의 소식까지 들으니 제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건은 비즈니스적으로 상도의를 벗어난 거 같으니 앞으로는 저한테 연락을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고 역시 전화와 카톡을 차단했다. B는 내 메시지를 받고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거 같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상담을 했다고 들었고, 그것이 나에게 여러 경로로 전달이 되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했다. 직원이 회사를 옮기는 것이야 빈번히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 좁게 그것을 격하게 반응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직원들이 동시에 2명이나 유출된 것에 대해서 남은 직원들에게 보이기 위한 대표자의 퍼포먼스적인 성격도 포함된 조치이기도 했다.


후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D는 이미 이전부터 B의 제안으로 공식 채용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고, C는 팀장 공석으로 인해 급행으로 진행되어 나에게 먼저 공유된 것이었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B의 합격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던 것이 타이밍과 여러 상황이 꼬이면서 엄청난 해프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나로서도 뒤늦게 경위를 인지하였지만 이미 뱉어놓은 말 때문에 번복하기는 애매했고, 또 B와는 굳이 일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었으므로 그냥 손절의 상황을 방치해 놓은 채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B의 멘토이자, 동시에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한 분의 중개로 어렵사리 다시 B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로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입힌 사실이 없기 때문에, 다시 만나면서 풀어야 할 꼬인 감정 같은 것이 없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당시에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공유하고 설명하며,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서는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다시금 좋은 관계로 회복되었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 밖에도 수많은 손절의 리스트들이 즐비하지만 2가지 유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예시로 들어보았다. 아마 내 친구인 A와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만날 일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가능한 살면서 다시는 만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만나면 너무 즐겁고, 서로를 배려하며, 유쾌하기만 한 만남이 수두룩한데, 굳이 불편한 감정을 참아가며 만나야 하는 만남은 나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손절과 번복의 역사가 쓰여질지는 모르겠다. 손절이 무슨 자랑거리도 아니고, 재주도 아니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손절하고 살아야지!' 따위의 다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세간의 평가가 무서워서 불필요한 관계를 이어가는 소모적인 삶을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해보며 긴 글을 마칠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RETA-WARS : #01 레타 버스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