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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Apr 13. 2024

Shut up & Just Run

자기만의 페이스를 지킨 다는 것

[2.5개월간의 러닝 일지]


10년 전인 2013년 95KG를 찍고 이러다 세 자리 가겠다는 위기감과 함께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한 결과 3개월 만에 78KG까지 감량을 했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살이 올라왔고 급기야 89KG을 찍은 체중계를 보며 다시금 독하게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처럼 그렇게 근력운동과 다이어트를 빡세게 할 수는 없는지라 아주 천천히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4년 1월. 매년 새해에는 여러 가지 결심들을 하게 마련이고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이러다 순식간에 또다시 3자리 숫자를 위협할 수도 있었기에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첫 런닝 날,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운동량이 부족했어도 그렇지, 이 정도 저질 체력은 아니었는데...  1Km 평균 9분 44초 페이스를 기록했다. 거의 런닝이라기보다는 워킹에 가까운 기록이었다. 두 번째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고,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또한 중랑천길을 빠르게 달리는 고수 할아버지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다지만, 그래도 도봉구청 건물 사진 찍고 돌아오는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심리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실 육체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단지 다리가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늘어난 체중 탓인지, 굳어버린 근육 때문인지 처음 이틀간은 무릎과 발목이 너무 아팠고, 하반신 곳곳에 알이 배겨서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런닝 하는 방법부터 신발까지 완전 엉망진창인 상태로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씩 고쳐나갔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페이스는 점점 빨라졌다. 산책로에서, 유튜브에서, 인스타에서 잘 뛰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체력이 안 되는 거지?'라며 좌절하며 포기했다면 결코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1Km 피치 최고기록이 6분 19초면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2달 전의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거의 30~40% 가까이 속도가 향상된 것이다. 그렇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와의 싸움을 꾸준히 하는 동안 몸무게가 89Kg에서 83.9까지 무려 5.1KG가 감량되었다. 



약간의 근력 운동(홈트)을 병행하고 있다 보니 몸과 얼굴의 라인이 아주 미세하게 살아나고 있었고, 혈압도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측정해도 거의 135/90 정도로 정상에 가까운 수치가 나오고 있다. 골프를 칠 때 언덕길을 아무리 올라도 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도 하나의 큰 특징이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경험하는 활력에 나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나이로 인해 현저히 체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편견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는데, 막상 도전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체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런닝을 시작하며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나보다 빠르게 달리던 사람들을 보며 그들과 경쟁하며 따라갔다면 아마도 난 따라 잡기는커녕 내 페이스를 잃고 초장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선수급 러너들과 나를 비교했다면 아예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수 있다. 나는 그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기에 주변에 나보다 빨리 뛰던, 느리게 뛰던, 천천히 걷던 아무 상관없이 그저 목표를 향해 묵묵히 뛰기만 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매우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차는 있겠지만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살기가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인생은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인데 정보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우리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 여부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스타를 포함한 각종 SNS를 보면 온통 화려한 삶들의 향연이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패셔니스타에 맛잘알 미슐랭이고, 온갖 삐까뻔쩍한 취미생활, 외제차와 명품은 기본이다. 예전 싸이월드까지 가지 않더라도, 페이스북 초창기만 해도 그래도 자신의 솔직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보편적인 SNS 문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자신의 삶 중에서 가장 예쁘고, 멋지고, 찬란한 장면만 고르고 골라서 보여준다. 때로는 사실이 아닌 것들까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자꾸 남들의 삶은 화려해 보이고, 상대적으로 나의 삶은 비루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억지로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게 되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결정을 한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랭이 찢어진다"는 옛 속담을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잃고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게 되는 것이다.



카지노에 가면 '바카라'라는 게임이 있다. 쉽게 말하면 홀짝게임 같은 단순한 게임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바카라는 딜러와 내가 싸우는 게임이다. 테이블에 여러 명이 있지만 플레이어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각각 딜러와 싸우는 게임이기 때문에 옆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나는 50달러를 베팅하는데 옆에서 1000달러를 베팅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내 성향에 맞지 않게 하이 베팅을 하게 된다. 혹은 하이 베팅을 하고 있는 사람과 의견이 다를 경우 소신 있게 해야 하는데 주눅이 들어 그 사람을 따라 베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그렇게 주변 사람의 베팅에 휘말릴 경우 돈을 잃게 되는 확률이 높아진다.


내 경우에는 같은 테이블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베팅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 루틴대로만 한다. 너무 신경 쓰이는 플레이어가 옆에 앉게 되면 그냥 내가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 굳이 맞부딪히며 쓸데없는 경쟁을 해서 내 흐름을 끊어버릴 필요가 없다. 그런 행위는 오직 카지노만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지노와의 전체 전적을 보면 100%는 아니지만 최소 60~70%의 승률을 거두며 적잖은 재미를 보고 있다.



카지노, 런닝, 인스타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재능, 성과를 보면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어서 상대적으로 나의 약점을 자꾸 원망한다던지, 그들의 보폭에 맞춰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한 선택을 하다가는 점점 행복을 잃게 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나보다 훨씬 돈 많고, 재능 많고,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차를 타고, 명품 옷을 입고, 골프와 해외여행을 다니며 플렉스 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차가, 그들의 옷이, 그들의 여행이 부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부럽지가 않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더 중요시하는 가치의 것들이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면 그만이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단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써서 노력할 바에는 그 시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보면서 나를 타인의 기준에 맞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법과 속도, 방향을 잘 찾아내어 나의 행복을 위한 현명한 투자를 하길... p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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