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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an 06. 2020

'샛복'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

#00. Prologue : 샛복 is my life


당구를 좀 쳐본 아재들이라면 당구장에서 아주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 '뽀록' 혹은 '샛복' 일 것이다. 본인이 의도한 길이 아니라 키스 (a.k.a 쫑)가 나서 전혀 엉뚱한 길로 성공을 했을 때 우리는 "이거 완전 샛복 좋구먼.." 이라며 반부럽, 반 짜증의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흔하게 '샛복'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글로 적어보라고 하면 어떤 이는 '쌔뽁'이라고도 하고, 또 '쌥뽁'이나 '쇳복'이라고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발음으로 불리는 이 '샛복'이라는 녀석의 정체는 그 오지랖 넓다는 구글 사전과 네이버 지식인 조차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구전 단어(?)처럼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만 떠도는 이 말의 어원에 대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해왔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진지하면서도 허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샛복'이라는 말은 바로 복과 복 사이에 낀 아주 소소한 복을 뜻하는 말로 추정이 된다. 다시 말해 '사이에 있는 복 = 사잇복 = 샛복'이라는 공식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구조의 단어로는 '사잇길=샛길' , '사잇강=샛강' 등이 있다. 이처럼 아주 큰 대박은 아니지만, 나름 소소한 복 정도로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요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이 말과 어느 정도 의미가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단어 하나에 그토록 집착하며 오랫동안 정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나름 깊은 연구를 한 것은 지난 40년간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녀준 그 녀석에 대한 소소한 보답 이리라..


아주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절에 가셔서 공양을 드리시곤 했다. 아주 절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특유의 사교성으로 그 절의 스님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람의 운명을 잘 보신다는 한 노승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노승께서는 사주 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 내시고, 누나의 현재와 미래의 남자 친구 문제를 정확하게 맞히는 그런 분이셨다. 놀란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내 사주를 내보였는데, 그 노승께서는 사주를 보자마자 딱 한마디로 정리를 하셨다고 했다. "뭐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할 거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뭘 그리 걱정하세요?" 


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전해 들은 것이 갓 스무 살이 되었을 즈음이었는데, 어머니는 내가 이 말만 믿고 노력도 안 하고 허황된 행운만 쫓아다닐까 싶어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심스레 말씀을 해주셨다고 한다. 사실 마흔이 훌쩍 넘어 이제 반구십(?)의 나이인 지금까지 나는 남들처럼 치열하고 악착같이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랍게도 그 결과는 노승의 말처럼 아주 평탄하며, 나름 순조로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직 인생의 절반이나 남은 시점에 이런 속단을 하는 것이 참으로 조심스럽지만...)


때때로 욱하는 마음에, 때로는 즉흥적이고 섣부른 판단으로 인하여, 수차례 인생의 위기가 닥치곤 했으나, 정말 희한하게도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내 의도와는 달리 아주 훌륭한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참 아찔한 상황이지만,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듯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던" 가난이 일상인 집이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 집보다 조금 더 못한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사건 사고 없이 부모님, 누나네, 우리 각각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가지고 있는 나름 중산층(?)의 삶을 누리게 된 것만으로도 일단 꽤 '샛복'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반구십 인생 이제 절반의 반환점(turning point)을 돌게 된 이 시점에 현재까지의 인생을 한 번 돌아보며, 수많은 샛복의 순간들을 한번 시리즈로 나열해보고자 한다. 때로는 진짜 소소하게, 때로는 엄청난 스케일로 항상 나의 주변을 묵묵히 지켜주는 샛복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이다. (부디 이 샛복 시리즈의 연재가 끝날 때까지 떠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샛복'이란 무엇인가? #001. 숫자 하나로 군대에서 꽃길 걸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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