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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an 11. 2020

'샛복'이란 무엇인가? #001

# 에피소드 01 : 숫자 하나로 꽃길만 걸은 썰

# '샛복'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게시물로 처음부터 읽으셔야 좋습니다.


샛복이란 무엇인가 : 프롤로그 




# 에피소드 1 : 숫자 하나로 꽃길 걸은 썰자 하나로 꽃길만 걸었던 썰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은 야자가 필수였던 엄혹한 시절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를 해야만 했다. 보통의 친구들과는 달리 수학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야자 시간 중 90% 이상 수학 공부하는데 소비할 정도로 수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내 전체 평균을 올려주는 유일한 과목이었다. 평소 숫자나 계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아이큐 검사를 하면 150 이상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학년은 그 유명한 수능 1세대들이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며, 유일하게 수능을 2번이나 본 전설의 그 학년. 나는 암기과목을 너무나도 못하는 관계로 내신성적은 항상 중간쯤에 머물렀었다. 또한 학력고사 모의고사를 봐도 비슷하게 중간에서 중후반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수능이라는 제도로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해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뭐가 크게 달라지겠나 싶어.. 그렇게 고1 첫 수능 모의고사를 본 뒤 나는 어떤 광명같은 것을 찾게 되었다. 아니 이건 왜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문제를 풀 수가 있는거지? 특히 수포자가 넘치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거의 수리영역 만큼은 독보적인 점수를 받곤 했다.  


2학년이 되어, 문과와 이과를 택해야할 때 주저없이 문과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과에서 수학으로 점수를 벌어보겠다는 아주 얄팍한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옳은 결정이었음이 금방 밝혀졌다. 인서울 대학은 커녕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싶던 내 성적은 수능으로 인해 인서울을 노릴 수 있는 성적이 되었고, 재수끝에 인서울의 끝자락 홍대에 턱걸이로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수능만세! 수학만세! 수리만세!




정신없이 대학 1학년을 마칠 때 즈음 너무도 갑작스럽게 영장이 나왔고, 1주일 만에 입소하게 되었다. 4주간의 신병교육대를 마치고 그저 덩치가 크고 평발이라는 이유로 포병 부대로 배치를 받았는데, 포병에서 다루는 155mm 포가 너무 무겁다 보니 덩치가 크고 힘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위주로 선발한다고 했다. 그 당시 덩치가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앞으로의 고생길을 떠올리며,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자대라는 곳에 도착하여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대기를 하고 있는데 한 장교가 나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오! 나의 은인님!)


"자네 학교는 어디인가?"

"이병 김OO!! 홍익대학교 불어불문과입니다."

(매우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음.. 문과라.. 수학이 약하겠군.. 혹시 수학 좋아하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좋아합니다."

(의외라는 듯) 

"오~ 그렇다면 음.. 2의 12승이 얼마인가?"

(마인드맵 : 2의 10승 = 1024 → 곱하기 2 = 2048 → 곱하기 2 = 4096) 

"4096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오.. 합격!"


이 짧은 문답을 끝으로 나의 군생활 2년 내내 편안한 꽃길로 바뀌게 되었다. 포병에는 직접 포를 다루는 '포병'과 유무선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병', 적의 위치를 계산하여 사격을 지위하는 '사격지휘병'으로 보직이 나뉘게 되는데, 내가 자대에 도착하던 시기에 마침 사격지휘병 중 한 명이 전역을 앞둔 시점이라 부사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것이고, 그 후 2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플러스펜 한 자루로 수학 문제만 죽어라 푸는 행복에 겨운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남들은 삽과 곡괭이로 죽어라 땅을 파며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 오른쪽 중지에 물집이 잡히는 투혼을 발휘하며... (대신 두툼해진 뱃살을 선물로 받게 되었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다. 나 말고도 많은 신병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평소 숫자를 좋아했었기에 그 긴장된 순간에도 촥촥촥 머리가 돌아간 것이다. 누군가 내게 군생활을 묻는다면 이 이야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2의 12승은 4096이라는 것. 사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남자에게 군대 2년은 엄청난 시련이고, 고난이다. 곱하기 한번 잘해서 그 고난의 2년을 아주 순조롭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샛복'의 덕이 아닐까?


to be continue.. 

'샛복'이란 무엇인가? #002. 101번째 프로포즈 (https://brunch.co.kr/@zinzer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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