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옷 말고 같은 옷으로 두 벌 주세요.
2학년 때 반장이었나를 했고 3학년이 되었을 땐 아무 생각 없었다. 2학년 때 맘고생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었다.
3월 첫 수업 날 담임은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5명 정도의 이름을 적고는
"여기에서 반장 부반장 뽑아."
지시했다. 그중엔 내 이름도 있었고 목소리 큰 애들 몇몇이 주도해서 내가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이 된 아이는 기뻐 웃으며 축하를 받고 있을 때 나는 조용히 교무실로 내려가 담임을 만났다.
"저... 부반장이라서 학교에 뭘 해야 되는 거면 저는 안 하고 싶어요."
"무슨 말이야 그게?'
"체육대회나 환경미화 같은 때 저는 음료수 같은 거 못해요. 그냥 다른 아이가 부반장 했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웠지만 담임은 말귀를 알아들었다.
"그런 거 안 해도 되니까 그냥 해. 너 작년에도 임원 했잖아. 작년처럼 하면 되지."
반장 부반장 엄마들은 어머니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어느 부모님은 학교에 큰 영향력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교장실에 서슴없이 들어가 차를 대접받기도 하고 학교에 소나무 한 그루쯤은 아이 이름을 새겨 기증하기도 했다. 소풍이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는 엄마들이 돈을 모아 아이들 간식을 사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환경미화 때는 화분이나 액자 따위를 보내기도 했다.
"야. 이거 반장 엄마가 사는 거래."
음료수와 빵 따위를 먹는 아이들 틈에 나는 몹시 불편할 때가 많았다. 매년 임원을 하면서도 한 번도 뭐하나 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보고 주제도 모르는 년이라고 했다.
"나대지 말고 학교 다녀. 얼마나 설치고 다니면 그런 거나 시켜주겠냐. 맨 돈 들어가는 거."
가난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인색했던 엄마는 내가 이룬 성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교내 무슨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서 타 온 상장으로 쓰레받기 삼아 먼지 나부랭이를 긁어모으던 것이 생각났다.
그땐 그랬다. 반장 부반장 엄마가 아이들 간식을 사주고 소풍날엔 담임 부담임 도시락을 싸서 들려 보내던 때였다. 매번 나는 빈손이었고 아마도 반장 ** 엄마는 우리 엄마와 통화를 하셨는지 소풍 때마다 도시락을 2개씩 싸서 ** 편에 보내셨다. 차라리 집이 가난해서 준비를 못한다면 나았을까.
이 정도로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이라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소풍 점심시간이 되면 각 반의 반장 부반장들이 고급스러운 쇼핑백에 들은 도시락을 선생님들께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엄마는 원래 학교에 얼굴 비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뭐.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 엄마가 아침부터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비싼 가방과 구두를 골라 신었다.
남동생의 학교에 간다고 했다.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한 남동생은"기본 성품은 온순하나 장난이 지나칠 경우가 종종 있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약간 부족한 편"이었다. 선생님의 평가였다.
공부는 그럭저럭 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조건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고 매일 저녁 부르짖었고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 그 정도도 못할 것 같냐고 맞장구쳤다.
고급 원목 책상이 새로 들어왔고 뇌파를 활성화해준다는 엠씨스퀘어인지 뭔지가 그 책상에 놓였다.
저녁마다 과일 간식이 정성껏 배달되었으며 남동생이 늦잠이라도 자는 날에는 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용을 해먹여야 될라나 벼.
-무슨 소리야. 머리에 용은 안 좋지. 차라리 홍삼을 해먹이지.
걱정을 해댔다.
남동생의 학교에 치장을 하고 갔던 엄마는 울기 직전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끼일 자리 없던 내가 주워듣기로는, 남동생이 친구들과 뭔가 학교에서 보면 안 되는 물건을 나눠보다가 걸렸다는 것이었다. 행여나 남동생의 명예가 실추될까 부모는 그 죄목에 대해 한껏 소리 낮춰 속삭였다.
징계를 받을 수 도 있는 사안이라는 말에 엄마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준비해 간 봉투를 꺼내 공손히 받아주십사.......
"그래서? 잘 처리가 된 거고?
아버지가 다그친다.
"그럼. 그까짓 게 뭐 큰일이라고. 내가 눈물이 팍 나는 게 말여. 딴 게 아니라. 거기 가보니까. 그 학교에서 우리 아들처럼 인물이 훤하고 잘난 놈이 없더라.. 세상에 저렇게 잘난 놈이 더 좋은 부모 밑에 못 태어난 것이 한이여.
내가 이거밖에 못 되는 에미인 것이 가슴이 찢어져..."
엄마는 이제 제법 크헝 크헝. 콧소리를 내며 통곡할 시동을 건다.
"아. 그러니까. 징계는 없다 이거지?"
"그렇대두. 봉투 주고 나오는데 담임이 그럽디다. 나는 아무개가 하도 이쁘고 똑똑해서 부모님이 훌륭하신 분이겠구나 생각했다고... 참. 그런 아들을. 내가 못난 부모라서... 더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담임도 우리 아들이 아깝다 싶었던 거지."
이제 아예 통곡이다.
그날 저녁은 방에 틀어박힌 남동생에게 부모가 매달려 아가 아가, 밥 좀 먹어야지, 짬뽕을 시켜주랴? 대합탕을 끓여주랴? 애처로운 소란이 계속되었다.
동생은 수학을 잘했다. 내가 보기에 동생은 수학적 머리는 뛰어났다. 본인 자신도 흥미 있어했던 분야였지만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문과를 선택했다.
당연히 동생의 공부는 고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누나. 이거 왜 답이 3번이냐. 2번 아니냐?"
"야. 이게 왜 2번이냐. 추론이라고 했으니까 봐봐.. 지문 딱. 읽고. 죽죽 딱. 척 봐도 3번이구만."
"근까 왜 3번이냐고."
"몰라. 그냥 읽으면 3번이야."
"아니 근거가 뭐냐고.. 아오. 언어 짜증 나.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든가."
"응. 딱 떨어져서 3번이야. 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봐라. 왜 돈은 거기다 주고 나한테 물어보냐."
"너도 모르지? 모르는 구만?"
"응. 나는 언어 만점. 읽으면 답 나와. 꺼지삼."
우린 어쩌면 좋은 남매가 되었을지 모른다. 서로 도와가며 세상의 많은 고난을 남매로서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형제란 양말과 같은 것이어서 성장기에는 왼발 오른발 같은 양말을 신어야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손은 왼손잡이 오른손잡이가 있어 주로 사용하는 쪽이 있다지만 발은 왼발잡이 오른발잡이가 따로 없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아. 물론 축구에서 왼발 슛, 오른발 슛에 특히 강한 분도 있긴 하겠죠??
두 발 모두 똑같은 양말로 보호해줘야 한다. 한쪽 발만 좋다고 양말을 신고 보호하면 결국 양말 없이 상처 난 발이 절뚝이게 되고 그 체중은 양말 신은 발이 다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이젠 서로 굳이 찾아볼 일이 없는 남매지간이란 아쉬울 때가 많다. 쓸모없어짐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아주 가끔씩 내게 있는 남동생, 누나란 존재가 나와 즐거운 추억 하나 없음이 아쉬운 것이다.
하나가 엎어져 울고 있어도 힐끗 바라보며 --저이가 누구였던가- 싶은 남매지간은 어찌 보면 짠한 비극이다.
사람이 만든 비극.
추신 : 이제 이 글을 끝으로 저는 악의를 벗고 트라우마를 끝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