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빼세요. 따끔~~
나 어릴땐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요즘은 각자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로 간호사분들이 찾아와 예방접종을 했었다.
일단 옆 반에서 주사를 놓고 있다는 것을 알면 수업이고 뭐고 아이들은 크게 동요했다.
모든 감각이 복도 마룻바닥을 향해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가운을 입은 그분들이 교실로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저 주사 겁나 아프대.
-야 들었어? 3반에 어떤 애는 뼈까지 바늘이 꽂혔다더라
-그냥 예전에 맞았다고 하고 안맞으면 안될까
핏기없는 긴장한 얼굴로 아이들은 담임의 지시대로 길게 한 줄로 늘어선다.
소매를 잔뜩 걷어올린 팔뚝을 주무르는 녀석, 손톱으로 엑스자를 눌러 만들고 여기다 놔달라고 해야지 히죽거리는 녀석 등등.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오장육부가 쩌르르 울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아. 진짜 맞기 싫다. 도망가고 싶다.
지금 당장 주사를 맞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과 팔을 번갈아 쳐다본다.
저 일그러지는 표정, 저렇게 긴 바늘이 푹 들어가는 팔, 입이 바짝 마른다.
이제 내 앞에 딱 두명 남았다. 그러다 한 명. 그리고 곧 내 차례가 왔다.
비스듬히 팔을 내밀면 알콜솜을 쓱쓱 문지른다.
지금이야!. 늦지않았어. 지금이라도 튀면!
찰싹. 푹!
개미똥구멍 만한 구멍일텐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다 바늘에 찔린 기분이 든다. 팔뚝이 무지근한 것이 아마도 뼈를 잘못 건드렸나 싶을때쯤 바늘이 빠진다.
그리고 가차없이 나는 밀려나고 다음 아이가 성큼 들어선다.
끝났다.
예방접종 대기하던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직진하고 있던 내 차량 옆으로 택배차량 하나가 신나게 달려오고 있다. 이대로 계속 오면 차 두대는 직각을 이루며 진하게 박치기할텐데... 왜 저러지?
온다 온다.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인데 실상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인데 저 트럭이 달려오는 순간부터 나는 가위눌린다. 온다 온다.. 서서히.. 온다 온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어. 어. 어. 하는 사이 꽈앙 사고가 난다.
이런. 된장할. 나 차 한잔이라도 해야하나 했잖아.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인데 트럭이 아주 그냥 슬로우비디오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거야. 그걸 나는 뻔히 보면서, 앞으로 닥칠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곱게 기다렸잖아.
목 보호대를 차고 근육이완제를 맞으며 침대에 누워있다.
오래 준비했던 시험의 합격자 발표날이 가까워질때도 그렇다.
3일. 2일. 1일.
합격 결과를 향해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던 달력의 날짜는 순식간에 당일이 되고 어김없이 바늘은 꽂힌다.
끼야악!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예정일을 7일이나 지나버린 나의 몸은 여전히 평온하다. 억지로 유도제를 주사로 맞고 '내진'이라는 고문을 당한다. 지금 오후 2시. 오늘 안에 나는 출산을 마치겠구나.
그냥 저 바늘은 오후 2시에서 밤 12시로 돌려버리고 싶다. 그땐 아이가 태어났겠지 싶어서.
"어유. 산모님 자궁은 철옹성같아요. 단 1센티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는 의료진의 말이다. 신체를 가리켜 철옹성이라 함은 극찬이련가
(농락은 당해도 함락은 당하지 않겠어.)
그리고 시계바늘이 새벽 1시를 가리킬때도 "안 열렸습니다" 소리만 반복청취했다.
무통 주사를 맞고도 진통제 주사를 몇 번 더 맞았다. 나중엔
"맞을 수 있는 용량을 모두 다 맞아서 더이상은 힘들다"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산모는 나 혼자뿐인 가족분만실에 누워 1박을 넘긴 지금 차라리 내가 기절을 해버리면 수술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얼마나 기도했던가.
기절한 척 눈 감아보면 "훗. 어딜. 여기가 어디라고." 라는 듯이 노련한 간호사분들이 뺨을 치며 "숨 쉬세요. 숨. 눈뜨고. 애기 산소부족합니다." 얄쨜없다.
인생에는 정해진 몇 가지 필수 예방접종이 있어서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차례를 기다리고 내 순서가 되면 그냥 팔뚝을 내밀어야 한다.
도망치고 싶어도 팔을 붙잡힌 채 기다란 바늘이 와서 꽂히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어떤 주사는 막상 주사를 기다리기가 힘들지 맞고나면 의외로 통증도 없고 가뿐한 것이 있다. 또 어떤 주사는
기다리고 맞는거 다 고통이더니 맞고나서도 부어오르고 알이 배긴듯 뻐근하게 며칠이나 아픈 것이 있다.
시간은 나를 어김없이 주사 들어가기 전과 주사 들어간 후로 재빠르게 이동시킨다.
지금도 주사 대기중이다. 우리 모두 주사 대기중이다. 심장이 쿵쾅대고 도망치고 싶어 미치겠다. 탈선은 없다.
내 앞으로, 또 내 뒤로 모두들 비슷한 주사를 대기중이다.
결국 죽음이라는 주사를 맞고 넋이 없어지는 순간까지 대기중이다.
죽음 생각을 하니, 맞고나서 고통을 느끼는 건 그래도 감사한 건가 싶다. 넋이 있어야 고통도 있으니까.
오우~ 나. 지금 방금 막. 알콜솜 닿았어. what 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