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무난하고 괜찮게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 되기도 하고
지금 너무 힘들다 싶은 사람에게는 나 스스로 프로그램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솔깃한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
자살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말들이 많다.
"너의 인생이 소중하니 자살하지 말고 그 각오로 살아달라"
라고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삐뚤어진 나의 마음은
--병원 침대에 고이 누워 합법적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후 처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목격자가 있다면 그 충격은 어찌할 것이며. 기타 다른 수습에 사회적인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당신 개인의 문제에 사회적인 수고를 끌어들이지 말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
라고 해석해버릴 때가 많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삐뚤어진 생각으로 오래 살아왔다. 깊은 분노는 밖이 아닌 안으로 파고들어 끊임없이 나 자신을 깍아내리고 공격해왔다.
행여 길을 걷다 커다란 돌이 날아와도
누구얏!
외치기보다는 -음. 이번 돌은 좀 많이 아프군-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게 불행은 훈제된 햄의 냄새처럼 깊이 배여버린 숙명으로 여겨졌다.
애초에 향수를 뿌려 냄새를 지워보려는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루 이틀 스며든 냄새가 아니다.
누구든 이 햄을 먹겠다고 입을 벌린다면 기꺼이 그 속에 들어가 씹히며 내 불행에 걸맞는 처신을 하겠노라고 체념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상담치료를 받으며 많이 좋아졌다고.......... 따봉이라도 외쳐주고 싶지만...... 실상은 아니다.
여전히 힘들고 무겁지만 다행히 하나 건진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완치없는 우울증에 아주 중요한 수확이었다.
자신의 문제와 감정을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끝없이 공허하지는 않다. 바로 그 뒤를 자책감이란 녀석이 손 흔들며 달려와서 문제지.
적어도 이 감정이 무언지 몰라 어쩔 줄 모르던 고통에서 벗어나 결국은 인과 관계가 있는 고통임을 알게 되는 차이랄까?
무엇이 더 잔인하고 아플지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를테니까..
뭐야. 빨강 구두에서 노랑 구두로 갈아 신었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이런게 우울증이다. 이러든 저러든 결국 힘빠지고 괴로운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로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본다면,
--당신이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까요.--
라는 말이 징글맞게 싫다.
어디서 주워들은 --자살 유가족자-- 라는 말도 소름끼치게 싫다.
물론 너를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해서, 너를 잃고 힘들어할 그들을 생각해서 자살할 마음을 버려달라는 예쁜 격려로 받아들일 수 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겐 그런 가족과 지인들이 있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자살유가족이니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니 하는 말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가족이나 지인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아니면 나의 죽음에 그들은 아무 감정이 없는 지경이라면?
내가 어찌 잘못된다한들 태연히 --여기 육개장은 맛이 없군--이런 소릴 지껄일 멘탈의 사람들이라면...
당신이 죽으면 당신 주변인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라는 말은 죽음의 순간까지 당사자보다 제3자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같아서 보기 거북했다.
아니면 --나는 그런 사람 하나도 없는데요-- 하는 당사자들에게 또다른 상처다.
아. 남들은 죽으면 남겨질 가족의 슬픔을 고려할 정도의 인생을 살긴 살았구나. 나는 당최 뭐 아무것도 1도 없으니....
차라리. 너 하고 싶은대로, 니 기분대로 살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이 기분이라도 좋을 것 같다.
뭐 솔직히 말하면,
우울하고 극단적인 생각도 해봤는데 암만 생각해도 날 위해 펑펑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고백을 지질하게 늘어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네 편이 하나도 없냐 라는 헛소리를 듣기 싫어 꽁꽁 싸매놓았던 불만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어도 그냥 그렇게 내 편이 없는 인생이 있다. 모든 인생이 노멀하지는 않다.
심리상담 갔는데 --이렇게 힘든 당신을 보면서 당신 가족도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이런 소리는 극혐이었다.
(비싼 곳을 갔어야 했는데...)
아뭏든 내 고통 내 슬픔에 남들까지 생각해가며 수위 조절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만 보고 너만 생각하고 그렇게 이기적으로 한번 살아봐라 라는 말이 차라리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