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상해원경(1)

심심해서 한번 써보는. 사실은 영화 '사도'를 재미나게 보고.

by 돌터졌다

성환은 귀를 뚫을 듯한 꽹과리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제 눈 앞에 버티고 앉은 무당은 더욱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꽹과리를 치는 이와 북을 치는 이들은 숨도 쉬지 않는 듯 제 손에 든 것을 두들겨댔다.


---금일 영가(靈駕) 저 혼신은 혼이라도 오셨으면 만반진수(滿盤珍羞) 흠향(歆饗)을 하고.... ---


성환이 꽉 쥔 주먹에 더욱 힘을 줬다. 아들이 살 수 있다면 두 주먹을 끊어내기라도 할 것이었다.


---살다 남으신 명과 복록은 자손궁에 전하시고 송경 법사(誦經法師) 법문을 받아 모질 악 자 악심일랑 버리시고....---


성환의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악심일랑 버리시고... 악심일랑 버리시고---


구절에 이르러 그는 마침내 까무룩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애기는 자는가?"


대문을 넘어서자마자 성환은 마당에 서있던 아내를 보고 서둘러 물었다.

빨래를 널던 아내는 성환을 보자마자 놀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남편이 싫어하는 짓을 또 한 탓이었다.


"네. 네. 방금요. 방금 잠이 들었길래."


말없이 고개를 돌려 방문을 쓱 쳐다보던 성환은 들어선 그대로 아내가 널던 빨래를 빼앗아 널기 시작했다.


"얼른 들어가 봐야지. 설핏 잠이 들었으면 놀라 울겠구먼."


유난히도 훤칠한 성환의 큰 키가 작달막한 아내와 대조되어 어색했다. 그의 큰 손으로 정성껏 널고 있는 작디작은 아기 옷은 나폴나폴 몇 마리 참새쯤으로 보였다.


"제가 할게요. 얼른 후딱 널면 되는데."


"어허. 들어가 보소. 애기 깰라."


나지막한 성환의 목소리에 얼핏 짜증이 섞여있음을 알고 아내는 대꾸도 않고 서둘러 뛰듯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이 40이 다 되어 어렵게 낳은 아들이었다.





성환의 아내가 17살. 성환의 나이 20살에 혼인을 하고 4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이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 부자요, 학식이 깊은 집안이었지만 대대로 손이 귀했다. 첩을 보는 것이 흠은 아니었지만 성환의 아버지도 성환도 첩을 맞지는 않았다. 그것이 더 미안해서 힘들었던 성환의 아내는 4년 내내 익모초를 입에 머금고 있는 듯 식욕을 잃어갔다.

아내에게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타박을 하지도 않았던 성환은 소일거리 삼아 이 마을 저 마을 지관일을 봐주러 돌아다녔다. 어제오늘 수시로 태어나는 동네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태어난 날과 시간을 넣어 사주를 살펴 부모의 청을 담은 이름을 지었다. 무병장수를 원한다 하면 그런 뜻으로 지었고 부자가 되게 해 주십사 하면 재복을 싣는 이름을 지었다. 여기저기 흔한 것이 아이들이었건만 정작 성환은 제 자식의 이름은 지어본 적이 없었다. 내 자식이 태어나면 나는 무엇을 소망하랴. 잠시 고민하던 그가 피식 웃어버린 것은 집안 내력 때문이었다.


"태어나주기만 해도. 그것만도 감사하지."


멋쩍어 피식 웃던 그의 방문 앞에서 사람 기척이 난다.


"저... 어르신 계시지유..."

태봉이었다. 성환의 할아버지 때 집안의 애기 머슴이었다는 그는 성환의 아버지뻘이었으나 성환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그러지 마시라 해도 자신은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고 고집을 부렸다. 성환이 그에게 꽤 많은 땅을 소작 부치게 해 주었으나 돌아오는 수익은 매우 적었다. 태봉에겐 일테면 거래였던 셈이다.

성환이 모르는 성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태봉은 정성껏 일깨워주며 지관일을 하는 성환을 어르신으로 불렀고 대신 소작 부친 수익은 제 깜냥껏 내놓았다. 성환 입장에선 손해였으나 태봉만큼 땅심을 돋울 줄 아는 이도 드물었기에 내처 눈감아주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리(情理)를 그의 손으로 끊는 게 어렵기도 했다.


방문을 열고 마루에 긴 다리를 내놓자마자 마당에 섰던 태봉은 성급히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마을에 흘러들어온 여편네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저기 구걸을 하듯이 살았던가 봐유. 가끔 일손을 돕기도 해서 동네 여편네들이 빈 방을 하나 내줬는데 오늘 새벽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애를 낳았다네유."


애를 낳았다는 말에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태봉은 이름을 지어달라는 청인가 생각했다.

"아이 이름을 지어야 한답니까?"


태봉은 히쭉 웃으며 코를 훔친다.

"아유. 구걸하는 여편네 애 이름이야 급할 거 있나유. 찬찬히 지으면 되지만 저기. 몸은 풀었는데 꼼짝없이 누워있으니 누가 그 산모 입에 미역국을 끓여 바치겠나유. 하루 이틀 밥상도 아닐 텐데."


그러니까 성환의 집을 찾아온 것은 수다 떨기 좋아하는 태봉의 성격상 동네 여편네들의 걱정을 듣고 내가 나서봄세 큰소리를 치고 돈을 좀 얻으러 온 것이었다.

성환은 입맛이 썼다. 4년이 넘게 자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지금. 자신에게 찾아와 거지 여인의 산바라지를 하라는 소리가 좋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태봉이만 해도 그 정도는 내놓을 수 있을 텐데.


"쌀이며 먹을 것을 좀 낼 테니 일단 가져가시겠습니까?"


태봉은 더욱 노골적으로 웃고 있었다.


성환이 성큼성큼 부엌으로 가 문 앞에 서 있던 아내에게 조용히 몇 마디를 했다. 아내는 남편의 큰 키에 맞추느라 고개를 발딱 젖히고 말없이 들었다. 그리곤 커다란 광 열쇠를 꺼내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광으로 가서 태봉을 돌아보았다.


"대문 앞에 내놓을 테니 거기서 가져가세요."


키가 작아 앳되게 보이는 아내는 당차게 태봉을 대문 앞으로 내보냈다. 이런 일에 앞장서 남편을 찾아온 얄미운 태봉 앞에서 광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순 없었다. 광 속에 쌀이며 건어물이며 곶감이며 뭐뭐 없는 게 없더라 떠들 것이 염려스럽기도 했다.

말없이 부엌 앞에 서 있던 성환은 아내가 내놓은 몇 가지를 큰 손안에 한 번에 몰아 쥐고는 대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을 게걸스럽게 품에 끼고 사라지는 태봉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문을 걸어 닫았다. 긴 다리로 성큼 방으로 향했다. 대문을 걸어 닫은 것은 행여 동네 여자들이 들어와 쓸데없는 소식으로 아내 마음을 심란하게 할까 싶어서였다. 방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가장의 지엄한 뜻이었다.

그 큰 대문을 열어젖히는 사람이 그날 태어난 아기일 줄을 성환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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