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시작했으니 3까지만 할지 5까지 할지 충동적 entp는 고민중.
지관이였던 성환의 집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럴듯이 성환은 외동임에도 혼인 즈음 따로 집을 지어 분가했다. 성환의 집은 마을에서도 조금 외진곳에 있었으며 집 뒷편에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성환의 아내는 푸성귀따위를 우물가에 갈 필요도 없이 그 시내에서 손질을 하고 밥을 지었다.
저녁이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집 뒤에 산과 물이 같이 있는 형국은 무슨 이치냐고 아내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산의 능선이 뻗어 큰 인물이 나올수 있지만 요절을 피하기 어려운 터이기도 하지."
나랏일을 할 큰 인물이라 말하려다 꿀꺽 삼켰다.
아내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요절이라뇨. 손이 귀한 것도 억울한데 요절이라뇨. 지금 제 정신이 맞아요?"
부르르 몸을 떠는 아내를 보며 성환은 빙그레 웃었다.
"명당은 흉당과 구별이 매우 어려운 법이오. 능선을 타고 그 기운으로 아이를 낳으면 미련없이 여길 떠날테니 걱정마시게."
여유로운 성환의 얼굴에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찝찝함을 느꼈지만 아내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 자신이 아이를 낳게 되면 미련없이 그 즉시 떠나자고 할 사람이 바로 남편일 것이다. 다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성환이 문을 걸어 닫은 뒤 이틀 정도가 지났으나 두 부부는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 성환의 아내가 농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삼시세끼 마당의 푸성귀를 뜯어 식사를 준비하고 성환은 성환대로 책을 읽으며 조용히 하던 일상을 계속했다. 오히려 널따란 마당을 둘러보며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퍽 좋았다.
"어르신... 계시지유. 어르신. 계시지유."
3일째 되던 날이었다. 대문 밖에서 태봉이가 자근자근 부르고 있었다. 성환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자 아내가 부엌에서 쪼르르 나와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열어주지 마세요. 지난번에 족히 보름은 먹을 만큼 주었어요. 고새 찾아온 것이 괘씸해요."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테지. 어디 땅을 좀 봐달라는 청이 들어왔나."
성환이 천천히 대문으로 가 작게 헛기침을 하고 빗장을 덜컹 미는 순간 대문 너머에서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앵~ 으앵~"
뒷골이 쩌르르 타고 내리는 듯한 느낌에 성환이 잠시 헉 하고 숨이 막혔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태봉이 야무지게 대문을 열고 비집고 들어왔다. 그의 품안에 새빨간 아이는 찢어지게 울고 있었다.
"아유. 어르신. 이 일을 어쩌면 좋대유."
말과 달리 태봉의 얼굴은 당황한 것인지 웃고 있는 것인지 표정이 괴이했다.
태봉은 마루에 아이를 내려놓고는 곧바로 자초지종을 늘어놨다.
마을에 흘러들어온 그 거지 여인이 홀로 아이를 낳았으나 성환의 도움으로 밥은 굶지 않았다. 그렇게 2,3일 미역국 잘 먹고 잘 자던 그 여인이 올때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려둔 채였다. 마을에 어린애들이야 넘쳐나니 누구하나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고 다들 농사에 매달리는 처지였기에 태봉 자신이 성환에게 아이를 데려 온 것이라 했다.
성환은 눈을 감으려다 눈 앞의 태봉을 의식하고 외려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표정은 태연했으나 그의 짙은 눈썹이 살짝 구겨진 것으로 보아 대단히 불쾌한 것을 아내는 눈치챘다.
"아니. 태봉아재. 이건 도리가 아닌 듯 합니다. 연고 없는 이 집에 산모 바라지를 내놓으라 해서 준 지가 며칠이나 됐다고 이젠 아이를 데려 온 겁니까? 내가 아이가 아직 없는데 남의 갓난쟁이를 어쩌라고..."
성환의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화가 나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성환은 한마디 없이 태봉을 지그시 바라봤다. 똑 떨어지는 그의 콧날과 턱선이 태봉을 베어버릴 듯이 날카로웠다.
"아. 그야 여부가 있나유. 어르신. 그것이 아니어유. 이 댁에 설마 제가 업동이를 들이겠어유? 아직 어르신의 자제도 없는 마당에."
태봉은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고쳐 앉으며 쩔쩔매는 시늉을 했다.
"당장 데려가세요."
성환의 아내가 힘을 실어 소리를 뱉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태봉의 뻔뻔함에 화가 난 건지 4년이 넘도록 자식을 못 낳은 자신의 처지가 수치스러웠는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아랫 마을에 과부 하나가 있는데 거길 보내 키워달라 청을 넣으러 갈 참이었어유. 그 과부도 며칠 생각할 말미는 줘야할텐데 그때꺼정만 어떻게 애 미음만 좀. 아. 지는 뭐 이 애랑 뭔 인연이 있나유. 지도 갑갑해유. 죽게 내둘순 없으니 이렇게 지가 발벗고 나서는거지유. "
성환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표정도 고요했다. 그의 앙다문 입술이 단정하다 못해 그림같이 고왔다.
'사내가 너무 고와도 무자식인겨. 거 얼굴이 지 마누라보담도 더 고와서는.'
물렁하던 성환이 입을 열지 않자 태봉은 더럭 짜증이 솟구쳤다. 누운 아이를 안아들 듯 추스리며 굵은 손바닥으로 함부로 이리저리 휘둘렀다.
으앵~ 으앵~
아이가 자지러질 듯이 울어댔다. 숨이 넘어가게 꺽꺽 대자 성환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봤다.
머리털과 눈썹이 노란 빛을 띠고 새빨간 얼굴은 동글했다. 3일된 아이답지 않게 콧날과 눈매가 또렷했다.
앙앙 울던 아이가 불쑥 제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만세를 부르듯 치켜올린 주먹이 제법 실팍했다.
아이가 주먹을 쪽 펴자 오종종한 손가락들이 파르르 떨린다. 삘건 손금이 애처로웠다.
쿵
가슴이 떨어지는 듯 묵직했던 성환은 머리와 딴판으로 엉뚱한 말을 하고야 말았다.
"며칠 돌볼 테니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찾아 데려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