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왜 이래요. 진짜아~~
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순간이 나오기도 한다.
영혼을 파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다.
정말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겼거나 간절한 그 무엇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긴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영화니까. 소설이니까.
오히려 그렇게 간절한 순간에 악마가 짠 하고 나타나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나름 선택받은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 늦었다고 생각한 때는 이미 정말 늦어버린 뒤라서 눈물을 흘리며 상황 종료가 되니까 말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시겠습니까?
당신이 악마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간절한 무엇인가를 영혼을 팔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를 살아 숨 쉬는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중요한 것인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악마가 요구하는 영혼이 나의 어디에 있는 것인가 찾아보게 된다.
만져지는 내 손이, 내 다리가 중요하고 보이는 내 눈이 중요하다. 내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내 영혼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영혼은 생경하다.
우연히 떠도는 글을 하나 봤다. 사람이 죽기 전에 혹은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후회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이란다.
사람 사는 거 다 그렇다. 우리가 얼핏 생각했을 때 좋은 인생이란 대개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화목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성실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건실한 직장에 취업을 한다. 그 후엔 착실히 재테크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런 나에 버금가는 좋은 사람을 짝으로 만나 결혼하고 건강한 아이들을 낳는다. 사랑으로 자식을 키워 제 몫을 하게 도와주고 늙어서는 여행이나 다니며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한 죽음을 맞는 것. 고리타분한 생각이라면 할 말 없지만 이런 삶을 대개는 원한다. 삶의 길목 길목마다 모범적인 답안을 선택한다.
1번이냐 2번이냐 고민될 때는 늙어서 후회가 없을 만한 것으로 고르게 된다.
당신 지금 실수하는 겁니다.
그렇게 1번이나 2번 중 하나를 고르고 열심히 살다 늙어서 우연히 한 설문조사에 응하게 된다. 친절한 리포터는 활짝 웃으며 질문을 건넨다.
"혹시 살면서 가장 후회된 것이 있다면 뭘까요?"
"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 못한 거요. 다시 젊어진다면 그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 겁니다."
당신의 대답을 들은 리포터는 돌변한다. 머리에 뿔이 두 개쯤 돋아나고 활활 타오르는 유황냄새라도 풍기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아갈 수 있다면 영혼을 파시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의 영혼을 팔아 다시 젊어진다면 또다시 당신은 1번이나 2번의 보기 중 무엇을 선택할까. 그땐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낼 수 있을까. 성공과 행복이 보장된 1번을 버리고 가보지 못한 2번을 선택할 수 있을까? 주변의 많은 지인과 부모 형제가 1번이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이 마당에 아니 난 2번 할래 할 수 있을까.
인생이 n회차가 아닌 다음에야 2번은 어렵지 싶다. 울어도 벤츠에 앉아 울고 싶고 슬퍼도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베란다에서 눈물이 더 잘 나올 것 같다.
돈과 명예를 선택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말이 아니다. 세속적인 것에 따르는 것이 혐오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국 선택을 했다. 주변에 휩쓸렸든 아니든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내 발로 들어갔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모든 선택은 극렬한 저항을 하지 않는 한 결정으로 굳어진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아.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라거나 --누구누구가 하도 좋다길래 그랬는데--라고 후회하고 그냥 내 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걸 하고 생각해봤자 계약서의 서명은 분명 내 필체가 맞다.
주변에 타협하는 순간.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무시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꽤 많은 순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악마는 영혼을 팔겠냐고 물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야. 이게 훨씬 더 나은 길인데 고생길을 굳이 갈래? 속삭였을 것이다. 너 나중에 후회한다. 일단 현실을 바라봐야지.라는 말로 어루만져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거래의 전문가다. 그 어떤 은행원도 어떤 사업가도 그를 이길 순 없다.
어쩌면 몇십 개월 할부로 조금씩 조금씩 우리 영혼을 뜯어갔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하고 휩쓸리기 쉬우며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간은 계산하지 않는 인간이다.
이러저러한 것을 재보고 들어 보고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이득이 되는 길인가를 계산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영리하게 인생을 꾸려나가는 훌륭한 방법이다. 다만, 후회는 없어야 한다. 후회된 선택에 대해 내가 피해자인 척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매몰되어 앞으로 걸어갈 힘을 잃어버린다.
악마는 바보 이반과 공동정범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 고되고 힘들었을지 몰라도 바보 이반은 내 맘대로 살아볼걸 하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 년도 안 되는 인생의 비밀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이고 타협했다면 후회는 하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일 것이다. (알겠냐. 나 자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