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상해원경(3)

드물지만 벌어진 일.

by 돌터졌다

아랫마을 과부에게 아이를 보내겠다던 태봉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던 집안에 빽빽 울어대는 아이가 들어오자 성환의 아내는 몇 배로 바빠졌다. 형제 많은 집 장녀답게 그녀는 곧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아내를 번거롭게 한 것이 미안했던 성환 역시 부지런히 잔일을 거들었다.

아이는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배가 고플 때 말고는 순한 성정이라 다행이었다.

닷새째 되는 날 기별 없는 태봉을 성환이 직접 찾아갔다. 저녁상을 차리던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돌아온 성환을 보고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식사부터 하세요."

성환은 수저를 들다 결국 말을 꺼냈다.

"아이가 갈 곳이 없다는데..."


태봉이 찾아간 아랫마을 과부는 무슨 조화 속인지 장돌뱅이 하나와 살림을 차리게 됐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새로운 곳을 찾느라 성환의 집에 못 왔노라 변명하는 태봉에게 기가 막혀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키우죠. 이 아이."


성환의 아내는 의외로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성환이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보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생선살을 발라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태봉 아재가 아이를 데려왔을 때부터 이럴 줄 알았어요. 그 유들유들한 사람이 우리 집부터 찾았을 때는 다 깜냥이 있었겠죠. 알고도 속아주는 거랑 모르고 속아주는 건 다르잖아요."


당장 아이를 데려가라며 소리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 아이를 보니 애가 순해서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아요. 그리고 어디서 듣기론 업둥이를 들이면 자기 자식이 들어서기도 한다니까 뭐."


성환은 자신보다 어린 아내가 든든한 동지같이 느껴졌다. 당장 아이를 주고 오라며 화를 내지 않아 고마웠다.


"대신 내년쯤엔 태봉 아재네 주던 소작을 거둬들여야죠. 핑계를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태봉 아재가 이 집에 드나들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해요."


말로만 어르신이라며 곰살맞게 굴면서도 소작료는 마음대로 내놓고 마을 대소사에 성환을 휘두르려는 태봉에게 응징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환은 국 한 수저 입에 떠 넣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성환의 본가에서는 업둥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근본도 모르는 핏줄을 호적에 올릴 수는 없다며 노발대발하였다. 게다가 사내아이라는 점이 더 불리했다. 그래서 호적에 올리는 것은 기약 없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대강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태봉에게 소작 부친 땅도 찾아왔다. 태봉은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람 일이야 길게 봐야 좋겠지유"라며 넉살까지 부렸다.


아이가 집에 들어온 지 3년이 되던 해에 성환의 아내는 입덧을 시작했고 성환은 아내를 위해 어린 식모 하나를 들여 수발을 들게 했다. 그해 겨울 즈음 건강하고 예쁜 딸을 하나 낳았는데 아들은 아니었지만 성환의 본가에서는 대문이 열렸으니 이제 소식이 또 올 것이라며 기뻐했다.

정성껏 금줄을 치고 삼칠일이 고작 이틀 정도 남았을 때 낯선 그림자 하나가 성환의 집 대문을 얼쩡거렸다.

몇 년은 족히 빨지 않은 것 같은 후줄근한 양복 윗도리에서 큼큼한 냄새를 풍기며 작달막한 키의 사내가 금줄 아래서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방문을 살짝 열고 식모 아이가 나왔다.

"분례야. 목욕물은 마당 한쪽에 얌전히 부어야 한다."

방 안에서 조용히 지시하는 성환 아내의 말에 분례는 함부로 끼얹으려던 대야의 물을 들고 마당 구석으로 향했다. 그러다 얼핏 대문간의 사내를 발견했다.

"누구세요?"

"오냐. 얘야. 혹시 이 집에 서너 살 먹은 어린애 하나 없니?"

"그건 왜 물어요?"

분례가 주춤 뒤로 물러서자 사내는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술이라도 마신 듯 붉으족족한 사내의 얼굴과 뜨거운 입김이 불쾌했다.

"어린애가 있거든 잠깐 안고 나와줄래? 내. 내가 이거 주마."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돈 한 장을 꺼내더니 분례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려 한다. 사내가 더 다가오자 분례는 대야를 집어던지고 피해 달아나며 소리를 질러댄다.

"어르신! 어르신! 나와보세요. 이상한 남자가 왔어요. 어르신!"


그 소리에 놀란 성환의 아내가 방 안에서 빼꼼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이상한 남자를 발견도 하기 전에 그녀가 본 것은 맨발로 공부방에서 뛰쳐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키가 장대같이 큰 성환이 누구냐며 달려 나오자 사내는 집을 잘못 찾았소 한마디를 간신히 뱉어내고는 얼른 도망쳤다. 사내를 뒤따르려던 성환은 문득 제 눈앞에 걸쳐 보이는 금줄을 보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소금단지에서 소금 한주먹을 쥐고 나와 대문 밖으로 던져 뿌렸다.


"분례야. 앞으론 대문을 열 일이 있거든 내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근 성환은 분례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삼칠일도 안된 갓난쟁이가 있는데 사내를 잡아 족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대야를 챙기던 분례는 땅에 떨어진 종이돈을 발견했다. 도망친 사내의 돈이었다. 분례는 얼른 돈을 집어 구겨진 것을 손으로 펴서 곱게 접어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그리곤 쪼르르 방에 들어가 아기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는 성환의 아내에게 수다를 떨어댔다. 얌전히 아기를 아랫목에 내려놓고는 산모가 잠시 일어나 돌아선 채로 땀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도망친 사내에 대해 수다를 떨던 분례는 누웠던 아기가 살짝 모유를 게워내자 자신의 손가락으로 아기 입 주변을 야무지게 쓱 닦아주었다.




탈 없던 아기가 갑자기 펄펄 열이 솟았다. 울지도 못하고 뜨겁게 삶아진 듯 축축 처지던 아기는 젖을 물지 않고 물 같은 것을 계속 토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온몸에 발진이 돋았다.


약을 짓고 의원을 집에 데려오려던 성환은 의원에게 아기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말하다 보니 점점 아기의 병이 무엇인지 제 스스로도 짐작이 갔다. 의원이 그럴 리 없다고 자신을 비웃어주길 바랐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손님이 오셨구먼."


천연두라는 소리였다.


"아니 이제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 손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원. 마마일세. 마마야."

"전 이렇게 멀쩡합니다. 마마가 아닐 겁니다. 그러니 가서 봐주시면."

"내가 지금 자네한테서 이렇게 멀찍이 있는 걸 보고도 가달라고 하는 건가. 싫으이. 게다가 자네 말마따나 이제 한 달 된 아기한테 침을 놓나 약을 쓰나. 가 봐야 소용없지. 미안하네."


성환은 아기의 머리맡에 붙어 앉아 밤이나 낮이나 상태를 살폈다. 마당까지 들어왔던 불길한 사내가 옮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방문 근처에 오지도 못한 그가 어떻게 병을 옮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기는 결국 얼굴에 온통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먹만 한 얼굴 한가득 빼곡히 잡힌 물집을 긁으며 괴로워했다. 치료도 못하는 지금 성환은 어쩌면 아기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덜컹.


갑자기 열린 방문에 찬바람이 들었다. 성환의 모친이 서슬 퍼런 얼굴로 방안에 들어왔다. 그녀의 손엔 커다란 대접이 들려있었는데 물이 한가득이었다. 버티고 서서 물을 가득 머금더니 온 방안에 뿌려대기 시작했다.


"푸~~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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