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삶는 노인에 관하여.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매일 매일 책을 읽어 주었던 때가 있다.
하도 읽다보니 신물이 났다. 아이는 특히 저 멀리 손닿을 수 없는 인물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런 인물이란 대개 공주였다. 그렇다. 아이는 서점에서 공주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히익" 하며 얼른 주워들었다. 아니 이런. 아직 내가 모르는 공주가 있었다니... 당황스런 얼굴로 얼른 계산을 하라는 듯 책의 비닐을 성급히 만지작거렸다.
매일 비슷한 공주 이야기만 읽어주다 보니 어느덧 나는 지쳐있었다.
결국 매일 밤 동화읽어주는 시간에서 도망치기로 한 나는 핸드폰에 녹음을 하며 읽어주었다.
모든 공주님들을 내 작은 핸드폰에 몰아넣은 뒤 아이가 원하는 공주님만 따로 불러 반복재생하는 것으로 벗어났다. 아이는 내 설득을 잘 들어주었고 그 시간에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편한건 딱 열흘이었다.
혼자 누워 작은 핸드폰 녹음소리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아이를 바라보기 미안했다.
뭐랄까.
언젠가 오로지 어떤 불상을 보기 위해 힘들게 신청한 관광프로그램에서 다른 모든 코스를 돌아보고 정말 고대하던 그 불상을 차가 너무 막히니 모형으로 대체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딱 그 기분이었다.
- 아니다. 나는 차가 몇 시간이고 막혀도 꼬옥. 굳이 직접 가서 봐야겠다라는 분은 손 들어라 그럼 가겠다 -
라는 가이드님의 말에 눈치만 보던 나는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그거나 그거나 같지 뭐어..하는 추임새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기도 했고.
결국 나는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청난 후회를 해야했다. 간만에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내려간 그곳에서 그렇게 원하던 불상을 먼발치에서라도 보지 못했다.
그날 내 모든 하루가 기만당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불상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단체프로그램을 이용하기보다 직접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고 들었다. 자차를 이용하거나.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한 곳이 있는데 굳이 그 차막힘을 각오하고 올라가겠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사람도 꽤 있었다.
나는 아이를 설득했다고 했다.
네가 정말 엄마가 직접 읽어주는걸 원한다면 진짜 그게 더 좋다면 그렇게 해줄께. 하지만. 핸드폰에 녹음된 것도 엄마 목소리고 내용도 똑같아. 게다가 핸드폰은 더 오래 많이 계속 들을수도 있어. 놓치면 다시 되돌려 들을수도 있어. 눈을 꼭 감으면 엄마가 옆에 있는거랑 똑같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그날 바로 핸드폰을 치우고 옆에 누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슬쩍 다른 이야기들도 섞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예전에 방영된 만화. 은비까비의 이야기, 무도사 배추도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그 중에 돌 삶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는 특히 재미있어했다.
노년을 마무리하며 극락왕생을 비는 두 노인이 가족의 지원아래 언덕에 솥단지 두 개를 걸었다.
부지런히 나무를 해다 각자의 솥단지를 펄펄 끓이는 두 노인.
종종 잘 익었나 보자며 열어본 솥 안에는 커다란 돌이 끓고 있다.
젓가락으로 찔러보니 반만큼이나 쑥 들어간다. 아직 덜 익었다고 말하는 노인들.
일종의 시험을 거친 뒤 결국 두 노인은 무사히 돌들을 삶아내고 염원을 이룬다.
사는게 돌 삶기와 같다.
황당하고 어이없어 보이는 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정성을 들이면 결국 무르익게 된다.
그런데 또 반드시 무르익는것만도 아니다. 돌 하나를 다 삶아내기위해서는 유혹도 많고 시험도 자주 본다.
나무를 해다 바치는 건 매일매일인데 이놈의 돌은 당최 익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돌이 익는다는게 말이나 되는건가 싶어 포기하고 싶어진다. 다 익은 남의 돌을 자꾸 훔쳐보게도 된다. 더 쉽고 빠르게 익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아니 있다. 어디에?
물론 그걸 알 리 없는 나는 묵묵히 오늘도 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넣을 뿐이다. 하루도 거르지않고 솥단지를 간수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분명 더 익었을 것이다.
내 솥안의 돌이 익고 있다.
투둑....
소리가 들린다. 돌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투둑..투두둑....
돌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