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의 핫 아이템.
내가 보기에 글이 담백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연히 세 분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필력이 대단한 분들 답게 인터뷰 내용도 알찼다. 각기 다른 작가와 각기 다른 질문자들의 기사였지만 비슷한 질문이 하나 눈에 띄었다.
- 글을 쓸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면?-
작가님들 모두 자신의 생각을 짧지 않게 대답해 주셨다. 그런데 그 내용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인정받고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인 만큼 그들만의 성공법칙인 것인가 솔깃했다.
짧은 이해력으로 몇 번이고 되짚어 읽어 행간의 의미까지 잡아내려 한 그 내용은 바로
-개인적인 내용을 피할 것-
이것이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때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깝고 억울해서, 고립되고 고독했던 나를 내려놓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은 힘들어도 아파도 말 한 마디 안하고 참고 살았는데, 그게 맞는거라 생각하며 버텼는데.
개뿔. 엄청난 경기도 오산이었다. (고립과 고독은 사람을 뒤처지게 만든다. 유머까지도. 된장할...)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이나 형제들 주변 사람들 중 몇몇 뽑아서 나와 대비시켜 조사한 결과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그들은 그들만의 심리적 안전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주고 격려해주는 심리적 안전망이 나는 없었다.
나는 늘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 내렸다.
잘못된 인지왜곡들이 내 모공하나하나 꽉 들어차 늴리리아 춤을 춰댔다. 니나노~.
사연이야 제각각이겠지만 남들이 하나쯤 있는 것들이 원래, 모두 없거나 아주 빈약한 사람들도 있다.
재수없게 나역시.
그런데 본인은 처음에 그걸 잘 모르다가 서서히 알게 된다. 내가 어딘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어울려도 나는 어딘지 남들과 겉도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빨강머리 앤을 읽다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또래들과 어울려 연극을 연습하던 앤을 마중나간 매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앤을 조용히 기다려준다.
깔깔깔 웃어대는 앤을 바라보던 매슈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아스퍼거 성향이 강한 매슈의 눈에도 뭔가 다른 점이 발견됐다. 가장 명랑하고 똑똑한 앤이 왜 다른 아이들과 달라 보일까.
모두 컬러인데 앤만 흑백인 것처럼.
매슈는 혼자 고민하다 답을 내린다. 앤은 퍼프소매옷이 없었다!
소매를 풍선처럼 부풀려 맞춘 옷이 유행이었지만 검소한 마릴라는 옷감 낭비라면서 단순한 일자 모양의 소매로 옷을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옷감은 정숙한 갈색이었다.
용케 그것을 알아차린 매슈는 반대할 것이 뻔한 마릴라를 속여 시내 상점에 가서 옷감을 사려고 한다. 물론 처음엔 필요하지도 않은 설탕 따위를 사긴 했지만 결국 눈치빠른 상점 여주인 덕에 앤은 소매가 풍성한 예쁜 원피스를 선물받게 된다.
그 옷을 선물 받은 앤이 웃고 있는 모습이란. 앤은 그날 연극무대에서 단연코 돋보였다.
매슈는 앤이 그제야 다른 아이들처럼 컬러로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릴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과 달리 앤은 약간의 허영심도 필요한 소녀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도 지독하게 알뜰한 일자소매에 지긋지긋한 갈색이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이 외출복은 내 재능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피어나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나는 늘 나는 왜 남들과 조금 다른 걸까. 혼자 고민하며 흑백으로 웃고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기요. 왜 나만 흑백이죠? 뭐죠? 누구 나랑 같은 사람 없나요?
제길. 이 갈색 원피스가 어떤지 말들 좀 해보라구!
그 퍼프 소매는 비싼가요? 그걸 입으면 정말 팔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느낌인가요?
만져봐도 되나요?
내 어두운 속마음과 불평을 브런치에 대고 쏟아내려고 했다. 또 쏟아내려고 했다.
조용히 입다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니 적어도
-아. 전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서요.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거든요.-
이딴 멍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구구절절히 울면서 내 옷이 왜 이런 줄 아니. 사연을 늘어놓고도 싶었다.
가엾은 나를 위해,
-너 들어와서 차 한잔 마실래?-
문 열어준 곳이 브런치니까. 난 정식으로 초대받아 온 손님이니까 내 할 말을 어느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모두가 공감할 만한 포괄적이고 우아한 주제로.
담백하고 세련되게 쓰는 글.
게다가 이런 글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것이 정답이고 앞서가는 자의 작품이며 존경할 만한 태도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간절히. 더 간절히.
뛰어난 그 작가들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나도 이들처럼 이렇게 좋은 글을 쓰리라고 자주 다짐한다. 그 전에 이 갈색 원피스를 좀 벗어야 할텐데...
아참, 그런데.
매슈가 브런치 씨였던가?
매슈 브런치?
입에 착 붙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