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이 지나 짝사랑을 합니다.
그렇게 고심하며 글을 쓰는 깜냥이 못 되는 내가 제목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무슨 말부터 써야 하지?
--당연하지 대뜸 고백부터 해버렸잖아.
--근데 내가 사랑을 알기는 하는 거야?
--뭐라고? 이봐. 거울을 좀 보는 게 어때? 이미 네 나이면 도인급이라구. 그런데 사랑을 모른다니.
이젠 몰라도 아는 척해야 부끄럽지 않을걸?
--그만 좀 해. 그 나이 소리.
--아. 미안. 그러니까 털어놓을 거 있음 더 나이 들기 전에 말하라구. 아. 또 미안.
--에이 몰라. 그럼 시작한다. 흠흠..
13년 전 고마웠어.
내가 상사에게 억울하게 엄청 깨진 적이 있었지. 한참 뒤에 그 상사께서 따로 불러 다른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주체를 못 했노라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셔서 억울함은 풀어졌어. 그리고 그 뒤엔 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기도 하셨구.
암튼 그날 퇴근 무렵이 다 되어서 상사에게 호되게 혼났는데 신입이었던 나는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잖아.
자리를 피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책상에 엎어져 엉엉 통곡을 했었지.
근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니까 혼난 것보다 그즈음 힘들었던 내 일상의 한을 쏟아냈던 거야.
곡을 하듯 울어댔지.
그때 문이 살며시 열리더라. 네가 들어오더니 내 근처 어디쯤 앉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진짜 엉엉 마저 울어제꼈지. 막내 동생뻘인 너에게 지킬 체면 따윈 없었어.
한참을 엎드려 울다가 힘 빠져서 고개를 들었겠지.
눈은 하도 부어 떠지지도 않았어. 앞이 안보였으니까. 얼굴은 물에 불린 비누마냥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그래도 너는 저만치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더라.
괜찮아요? 소리 한번 할 만도 한데... 안 그럼 왜 들어와 한참을 앉아있던 거냐고.
암튼 난 혼자 머리를 가다듬고 녹은 비누 아니 내 얼굴을 정리하며 눈을 떠보려고 애썼어.
이 몰골로 퇴근은 하겠는데,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서 내 서랍을 잠그고 가방을 가져오지는 못하겠더라.
그 상사를 또 봐야 할지 모르니까. 이렇게 허물어진 내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그래서 부탁했지.
"ㅇㅇ씨. 미안한데, 내 자리에 가서 가방 좀 가져다 줄래?"
너는 무슨 무협지 무림맹주라도 되듯이 기척도 없이 일어나 순식간에 내 가방을 가져다주었지.
그렇게 퇴근하려는 나에게 네가 그제야 한 마디를 했지.
오늘 기분 풀릴 때까지 같이 있어주겠다고.
그렇게 너는 눈물에 불어 터진 나를 데리고 회사를 빠져나왔고, 단 둘이 어색해서 나는 친한 언니 한 명을 불러냈지. 셋이서 생맥주도 한 잔 마시고 영화도 한 편 봤었고.
점점 수다를 떨고 웃던 나는 기분이 완전히 풀렸어. 그런 나를 너는 무림맹주답게 지그시 지켜볼 뿐이었지.
그제야 네가 지루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가자고 일어섰고.
그 날 이후로도 너는 나를 자잘하게 참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주었지. 소란스럽지 않게 말없이 임무를 해치우고 사라졌어. 동선이 달라 겹칠 일이 없었지만 내가 가야할 숲의 가시덤불 정도는 늘 말끔히 치워져 있더군.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같은 부서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은따였거든. 워크샵을 가서 한 숙소에서 잠은 같이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나혼자였어.
모두들 날 깨우지 않고 식사를 하러 간거지. 허둥지둥 식당으로 내려가 보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다가 의자에 앉는 나를 보며 맛있게 먹어요. 하고는 일제히 일어서더라고.
아. 그 회사에서만 그랬다는 거지 다른 곳에서는 평판 좋고 행복했으니까 크게 상관은 안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
이봐. 무림맹주.
그땐 고마웠어. 여기에 너의 다른 권법을 일일히 나열하지 못하는게 아쉬울 뿐이야.
정말 고마웠어. 운전도. 곱창도. 소주도. 만화책도. 다른 것들도 다.
13년이나 지났지만 너를 자꾸 꺼내 추억하는 건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힘이 되기 때문이야.
혼자가 아니라는 건 모든 고난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를 주거든.
그래서.
"기분 풀릴때까지 같이 있어 줄께요"
라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가슴에 넣어둘거야.
어차피 중원에서 하수와 무림맹주는 다시 만날 일이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