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과 소시오패스에 관한 책을 꾸준히 찾아보고 있다. 그중 미니멀리즘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물건 쟁여두기를 좋아하는 나와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미니멀한 삶에 빠져들기 시작한 계기는 도배였다. 아이가 어려 여기저기 온통 낙서를 해대기 시작했다. 딱 자기 키만큼의 높이에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줘도 -알겠어- 대답을 하고는 다른 방으로 가서 낙서를 하는 게 아이들 아닌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벽에 못 안 박는 게 어디냐 싶어서. 결국 벽에 한가득 갖가지 그림과 낙서가 꽉 찼다. 고심 끝에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다. 기술자를 구하고 페인트는 가능한 한 건강에 해가 없는 제품으로 직접 골랐다.
그리고 방 하나를 완벽히 비우고 작업이 시작됐다. 살면서 방 하나를 완전히 비워내는 작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방.
창문과 방문만 있는 방.
미색으로 곱게 색칠된 그 아무것도 없는 방에 방석 하나 깔고 앉아 있자니 마음이 이상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시선 닿을 것 하나 없는 텅 빈 방은 처음엔 공포에 가깝다. 오랜 타성으로 '저쪽엔 서랍장. 이쪽엔 책장...' 이런 식으로 어느새 가구 배치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조용히 말간 벽을 바라보다 보면 이번엔 '아. 청소 안 해도 되니까 좋네.' 싶다. 아무것도 없으니 치울 것도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더 바라보고 있으면 그 단계를 넘어서 문득 공간 안에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텅 빈 방에 나 혼자 있는데 나를 뺀 나머지 공간에 동글동글 보이지 않는 공기방울처럼 시간이 흐르고 있다. 공간이 큰 만큼 공기방울은 가득 차서 평소의 째깍째깍 정신없던 시간이 어느새 천천히 내 주위에 어쩔 줄 모르고 멈춰있는 것 같다.
'내가 시간을 이기고 있구나.'
정신없이 사물과 사건에 휘말려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기 마련인데 이 텅 빈 방 안에 갇힌 시간들은 사물과 사건에 현혹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저들의 미끼를 물지 않았으니 나는 현혹되지 않은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들에 대하여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리하여 결국 내가 발을 동동거릴 사물과 사건이었는가 그 합당한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보통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아주 열심히 했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성껏 한 것이 적발되었다. 미끼를 물어 현혹된 나는 타성에 젖어 움직이는 것이 많았다. 반면 챙겨야 할 것은 놓치고 있었다. 조용히 차 한 잔을 처음 뜨거울 때부터 식을 때까지 마시는 여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구절구절 꼭꼭 씹어 읽는 넉넉함. 나를 헷갈리게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할 시간 등이 있다. 마음이 풍만해졌다. 실상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떠오른다.
사람은 시선이 비워지면 비로소 자신의 내면으로 그 시선이 향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건과 사물을 눈앞에서 비워내는 경험은 나쁘지 않았다. 서랍장과 책장을 쓸고 닦을 시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싶어 진다. 매정한 서랍장과 책장은 내일 또 먼지가 쌓일 테지만 오늘 들여다보고 만진 내 마음은 딱 그만큼 더 여물어져 간다.
하루 나를 어루만진 사람과 한 달 나를 어루만진 사람과 일 년 나를 어루만진 사람 중에 누가 더 자신을 잘 알고 깨달을 수 있을까.
허구한 날 서랍장과 책장 들여다보고 청소할 줄은 알았지만 더 값진 나 하나 온전히 어루만져준 날은 며칠이던가.
그렇게 하루가 없이는 한 달이 없고 한 달이 없이는 일 년이 없다. 점점 내 마음은 내게서 멀어져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누군지, 뭘 원하는지. 뭘 해냈는지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적어도 나이 많은 어느 날. 아직 소년소녀 같은 내 마음이 늙어버린 내 몸에게 그 소중한 몸으로 나를 위해 한 게 뭐 있냐고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다.
정기적으로 휴대폰을 바꾸던 버릇을 버리고 오래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금제를 바꾸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오래 통화하지 않는다. 형식상 이어가던 모임을 조용히 정리했다. 집에서는 먼저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 물건은 정리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선물한 물건이나 가슴 아픈 추억을 떠올리는 것들도 충분한 애도 후 내보냈다. 물론 다른 것으로 또 사들이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정리하고 개수가 많던 통장도 줄였다. 이고 지고 다니던 전공서적도 내버리고 내 첫사랑이 첨삭해준 강의교재는 모진 결심 끝에 버렸다. 이제 그 사람의 글은 신문이나 온라인 매체에서 실컷 볼 수 있으니까. 가벼워진 미련만큼 회한도 사라졌다.
아이에게도 제안을 하나 했다.
매일매일 저녁에 네가 버리고 싶은 물건이든 뭐든. 아무튼 너에게 쓸모없는 것을 2가지 이상 가져올래?
엄마와 같이 인사하고 버리자.
어쩔 수 없는 이 극성 엄마는 살아오며 만났던 나이스 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말았구나. 직업도 직급도 다양했지만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천재적인 업무 실력을 보였던 어느 분은 늘 깔끔한 책상에 단정한 옷매무새를 하고 계셨고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어느 분은 본업, 강연, 창작, 봉사, 가정 모두 훌륭히 이끌고 있었는데 비결은 물건 구매에 절대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전문가에 맡길 것은 전문가에 맡겨 에너지를 아낀다는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을 남기는 생활은 필요 없는 것에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첫걸음인가 보다.
아이에게 매일 2가지 이상 버릴 것을 가져와달라는 내 주문은 어려서부터 아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을 찾아내 삭제하는 연습을 위한 것이었다. 인생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필요 없는 것만 잘 골라 내버려도 인생이 성공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날이 쌓여가는 세월 지난 아이 물건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첫날엔 다 쓴 공책이나 빈 물감통 따위를 가져왔다. 그다음엔 고장 난 장난감이나 오리고 남은 자투리 종이를 가져왔다. 방바닥이며 책상에 쌓아두는 습관이 고쳐지길 침 흘리며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와서 말하기를.
"2학년 때 갑순이가 갑자기 나랑 안 놀았잖아. 그래서 나는 다른 애들이랑 놀았지만 나는 갑순이가 정말 좋았거든. 엄마는 모르지만 내가 갑순이한테 편지를 썼어. 내가 뭘 잘못했냐고. 사과할 테니까 다시 놀자고."
그랬구나. 매일 붙어 다니고 화장실 갈 때도 손잡고 같이 다녔던 갑순이와 갑자기 안 놀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내색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었다.
"그런데도 갑순이가 날 모른 척해서 정말 속상했어. 그래서 한 달 정도를 내가. 급식이 아무 맛도 없었어. 그런데 요새는 갑순이가 다시 사이좋게 놀재. 근데 자기 하고만 놀자고 했어."
학년이 바뀌고 세월이 지났는데 갑순이가 다시 잘 지내보자고 한 건 좋은 거 아닌가? 근데 자기 하고만?
"갑순이하고 다시 친하게 노는 건 좋은데 대신 지금 친구들이랑 놀지 말래.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을 좀 했지."
갑순이의 처사에 울컥했지만 꿀꺽 삼키고 아이 말을 계속 들어줬다.
"난. 그래서 갑순이와 놀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로 했어. "
아이는 오늘 버리려는 것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갑순이도 좋지만 지금 친구들이랑 안 놀면서까지 놀고 싶지는 않아. 일단 2학년 때 뒤통수 맞은 것도 왜 그랬는지 말도 안 해주고 말이야. 지금 친구들이 조금 더 좋은 거 같아. 이제는 갑순이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보다 몇십 년 더 살았다는 입장에서 내가 너보다 더 나은 인간이며 더 잘난 인간이라는. 나의 오만과 편견이 와장창. 삭제되는 순간이었다. 아이 덕분에 내 추악한 것 중 하나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