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흡하세요..후우우하하하.....공기는 공짜입니다. 아직은.
지인이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전화 너머 여전히 조심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지랖이 발동했다. 요즘은 뭐 별일 없느냐는 나의 말에 까르르 웃어댄다.
몇 년 전 그녀 자신의 순진함이 떠올랐겠지.
새로 집을 사서 이사한다는 그녀는 나에게 작은 것도 털어놓으며 불안감을 달랬다. 아파트 리모델링이 돈만 주고 맡기면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자잘한 디자인과 자재 선정도 신경 쓰이고 내 맘대로 제대로 설치가 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얼렁뚱땅 공사가 지나고 나면 하자보수 받기도 번거롭고 두 배로 짜증이 난다.
싱크대를 자체 제작하는 곳에서 맞추기로 했다는 말에 좀 걱정스러웠다.
자기 장사니까 더 잘해줄 수 있겠지. 근데 뒤집으면 자기 장사니까 더 이윤을 남기려고 하지 않겠어? 우리 같은 일반인 눈에는 몰라서 안 보이고 알아도 못 찾는 흠이 있을 텐데 그냥 브랜드로 하라는 내 말에 그녀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여기 사장님이 여잔데 남편이 엉망으로 해서 자기가 직접 맡아준대요. 남편이 바가지 씌워서 손님 다 떨어졌다고 자기가 좋은 걸로 싸게 해 준다고 했어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두 번 듣기도 짜증 났다.
"그래도 같은 집안 한 살림인데 거기서 거기겠지. 대놓고 바가지 씌웠다는데 딴 데서 하지 그래?"
"아니에요. 자기 남편 대신 자기가 직접 설계하고 싸게 해 준다고 오히려 남편한테 가격 말하지 말라던데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남 일은 남 일이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하고 왔다는데 내가 멱살 잡아 뭐하겠나.
그저 잘하라고 인사만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녀는 싱크대 공사가 엉망이라고 또 전화를 걸어왔고 당장 도로 철거해가라고 했지만 업체 쪽에서 과실을 인정하고 돈 안 받겠으니 그냥 사용하시라고 했단다. 그녀는 도로 철거하고 새로 다시 싱크대 공사하기도 입주날짜 맞추기에 촉박하니 대강 1,2년 쓰다 다시 하기로 했단다. 공짜로 한 셈 치니 참아질 만하다고 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냥 지금 철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야지."
내 말에도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공짜라서 더 좋아했을까?
공짜는 천천히 퍼지는 독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는 횡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각자의 생각이니까.
이야기의 끝은 이랬다. 그녀는 일 년 뒤에 법원에서 소장을 받았다. 바로 그 싱크대 업체 쪽에서 그녀를 상대로 싱크대를 주문 제작하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대금을 결제하라는 내용으로 소를 건 것이다.
그녀는 여자 사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여자 사장은 남편이 저지른 일이라 남편과 이야기 하라며 남편 뒤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민사니까 이러저러 항변을 하고 처리를 하면 액수는 줄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아보려면 그녀가 알아볼 일이었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속편 하려면 그냥 공사 대금을 다 주고 해결을 보면 간단할 일이기도 했다.
살다 보면 아군과 적군을 잘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삼국지는 안 읽었어도 어려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라든가 고무줄놀이라도 열심히 하고 놀아보면 알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경기를 하다 보면 알게 된다. 다 같이 좋은 친구들이지만 내가 청군인지 백군인지는 알고 어울려 놀아야 할 경우도 있다.
인생의 작은 사기나 큰 사기는 그 발생 기전이 비슷하다. 일단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머리에 담고 저 사람이 설마 나에게 그러랴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차라리 나와 이익을 같이 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잘 따져 행동하는 것이 손해가 적다.
내가 학생한테는 특별히 싸게 해 줄게.
나 오늘 크게 손해 보는 거야
어디 가서 이런 거 못 구해. 내가 오늘 인심 쓰는 거야.
내 말만 믿어봐. 나 못 믿어?
대충 뭔가 찝찝하지만 내가 이득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 눈을 똑바로 뜨고 단순한 진리만 기억해야 한다.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