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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Dec 14. 2021

인간 교양수업

그들은 모두 한 패다.

그래도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대학교였다. IMF가 터진 직후라 학비가 싼 국립대의 몸값은 

치솟았고 비용 때문에 원하던 사립대를 포기하고 하향 지원해서 온 아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신입생 모임을 하고 대개 비슷한 부류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공부나 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 모임은 5명 정도였다. 출신지역도 다 제각각이었다. 

그중 한 명이 좀 독특했는데 이 녀석이 어떻게 우리 무리에 끼어들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녀석은 시골 출신이었고 키가 훤칠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코가 오뚝한 미남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외모와 달리 패션 센스는 영 꽝이었다. 워싱이 하나도 안된 새파란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와

새파란 청자켓을 입고 중학생용처럼 보이는 네모 반듯한 책가방을 매고 다녔다. 

문제는 이 차림새를 일주일에 거의 매일을 입고 다녔다. 가끔 다른 바지나 외투를 입은 날에 아이들이 

웃으며 물어보면. 어. 엄마가 그 옷을 빨았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나마 녀석이 바싹 마르고 기다란 모델 체형이라서 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입생 로랑을 떠올리며 웃곤 했다.

두껍고 까만 뿔테 안경까지..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외모와 딴판으로 조곤조곤 웃으며 다가와 말을 붙이고 나도.. 나도.. 나도.. 끼워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명랑한 초등학생 같았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모인 어느 날 학식을 먹고 중앙도서관 어디쯤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그 녀석이 

또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 이번에 아웃백 갔다 왔잖아. 근데 진짜 신기한 게...."

"63 빌딩 엄청 좋더라. 난 있지 거기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다가..."

"종로 3가에 무슨무슨 식당 가봤거든? 근데 그 집은..." 


여름방학 때 자신이 어딜 다녀왔고 뭘 했는지 눈을 빛내며 떠들었다.  우리는 모두 흔쾌히 들어주면서 

몇 마디를 보탰다. 


그래? 우와. 좋았겠네... 어. 좋은 데 갔다 왔네...

야. 거기도 좋은데 충무로 어디 가면... 거기 말고 용산 어디 가서.... 

에이... 담에 가면  이런이런 걸 먹어봐 그게 더....    그리고  하동관은 대파를 잔뜩 넣어서.... 


녀석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도 웃어주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강의시간 됐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우리 무리가 아닌 한 친구 A가 같이 커피를 마시게 됐다. 그 자리에서 여지없이 

입생 로랑이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A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야. 너는 무슨 그런 얘길 하냐. 그런 건 고등학교 때 졸업했어야지. 그걸 지금 해봤다고? 되게 웃기네. 

넌. 수준 좀 올려라. 그리고 너 무슨 옷을 그거만 입고 다녀? 너 볼 때마다 그 옷이더라. 좀 빨아 입어라 임마. 

딴 옷은 없냐. 알바라도 해서 사서 입어. 좀. 아유. 구리다 임마. 너 소개팅도 안 해봤지?" 


순간 우리 무리는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입생 로랑의 눈치를 흘낏 살폈다.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A에게 말하는 싸가지가 뭐냐고 한 소리하려다 꾹 참았다. 대신 


"아유우. 아주 패션스타 납셨네 납셨어. 너 입생 로랑 좋아하냐. 뭘 입는지 막막 관찰하나 봐. 웃긴다. 야. 

우리 수업시간 다됐다. 일어나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돌리며 자리를 끝냈다. 그리고 그날 입생 로랑은 오후 수업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학교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녀석이 다녀오고 본 것이 어디고 무엇인지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기도 했다. 

우리 중엔 아버지가 대학교수이거나  땅부자집 딸이거나 한 아이도 있었다. 모두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

아웃백 따위가 신기할 일은 없었다. 63 빌딩 안에서 길을 잃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 우리 모임에 끼게 된 건지 확실치도 않은 입생 로랑의 말을 유쾌하게 들으며 같이 

커피를 마셨다. 가끔. 넌 다리가 길어서 면바지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느니 잘생긴 얼굴을 뿔테 안경으로 

가리지 말고 렌즈를 껴보라고 권하는 정도였다. 

가끔 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실 때 꾸깃한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입생 로랑을 보고 다른 과 아이들이

무슨 수준 떨어지게 저런 애를 부르냐고 말해도 상관 않고  손 들어 "여기야 여기" 테이블로 입생 로랑을

끼워줬다. 

뺀질거리는 닥터마틴이나 나이키 운동화보다 과제 자료조사 충실히 해오는 입생 로랑의 꾸깃한 운동화가

차라리 나았다.  엄마가 대학교 입학했다고 시장에서 사줬다는 청자켓과 청바지를 늘상 입고 다니는 

입생 로랑이 싫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나도. 나도. 나도를 외치며 

끼워달라며 붙임성 있게 달려드는 입생 로랑이 기특했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은 대목도 가끔 있었다. 

물론 그 친구가 우리보다 정신적으로 많이 앳된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입생 로랑이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서서히 본인이 깨우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실하고 구김살 없는 그

친구의 모습이 건강하게 느껴져 그 친구의 행색이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될 수는 없었다. 

그냥 그 친구의 개성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정이나 그 친구 이야기가 너무 뻔하거나 듣기 싫으면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우리 모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그 말을 A가 해버렸다. 나이 차이 많은 막둥이가 

밖에 나가 얻어맞고 온 것을 본 큰 형님의 기분이 느껴졌다. 입생 로랑이 너무 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랐고 녀석을 걱정해주는 우리의 마음이 살가웠다. 


그 해. 우리는 동급생을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염려했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교양수업 하나를 마쳤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그 모임 중 한 명이었고요. 후기를 말하자면 

그 입생 로랑 친구는 군대를 다녀오느라 여자인 우리가 졸업한 뒤에도 복학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원 문제로 잠시 학교를 찾았을 때 녀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안경을 벗고 무스로 머리를 세우고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입생 로랑은 몰라보게 멋졌습니다. 둥그런 테이블에 후배 학생들 서너 명 무리 가운데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수업에 오지 않았던 입생 로랑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날의 독설이 녀석을 멋지게 성장시켜준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끔 내 심정을 올리는 글을 썼을 때 따뜻하고 넉넉하게 나를 감싸주는 작가님들이 어쩌면 모두들 다 알고 계시지 않을까. 입생 로랑을 바라봤던 내 시선처럼 아직은 서툴고 어린 내 마음과 글을 다정하고 애처롭게 위로해주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다 알면서도 그래. 그렇게 글이라도 쓰면 나아질 거야. 하는 마음으로...


(제가 어디선가 받았던 악플이 가슴아프기는 하지만 저 자신을 차갑게 돌아보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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