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도 힘들....
단골 애견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월요일 오전 10시에 개를 데리러 온다. 처음 미용을 맡길 땐 산책 겸 내가 데려다주었다. 한 시간 정도 실컷 산책을 하고 미용실에 들여보내면 개도 지쳐서 고분고분하거나, 산책의 만족감으로 관대? 해져서 미용사님에게 입질을 안 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다 작년 봄쯤에 미용사님이 문자를 보냈다.
"샵에 오실 때 발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안아서 데려와 주세요."
으잉? 좀 당황했다. 두 발로 아니, 네 발로 잘 걸어 다니는 개를 굳이 내가 안아서 샵에 데려가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미용을 싹 하고 목욕까지 하는데 청결한 발로 데려다줘야 하는 건가 싶었다. 자칫 예민해질 수 있는 미용 시간에 입질이라도 못하게 산책시켜 넣어준 게 잘못이었나. 우리 집 개 발이 유난히 더러워서 미용할 때 불쾌하셨나?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 데리러 와주세요."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개를 차에 태우지 않는 나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개 미용샵까지 개를 품에 안고 가기 힘들었다. 3킬로그램도 꽤 무겁다. 그리고 걷고 싶어 버둥대는 아이를 달래기도 싫었고 마치 당나귀를 두고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생각났고.
그 문자 뒤로 쭉 개 미용은 집 앞에서 보내서 집 앞에서 받았다. 우리 집 개만 빼고 양쪽 인간들은 만족스러웠다. 한 인간은 개를 들고 가지 않아서, 한 인간은 더러운 개발의 털을 깎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몇 년 동안 이용한 미용샵인데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몇 년동안이나 거슬렸지만 꾹꾹 참고 있었다.
나 대신 개의 털을 깎아주고 신경 써 관리해주니 감사한 마음에 꾹꾹 참았다. 물론 유상이지만 말이다.
우리 집 개도 완전히 적응을 해서 이젠 샵 원장님 품에 편안히 안겨있는데 새삼 내가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있나. 그랬다간 다른 샵을 알아봐야 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래. 내가 나지 뭐. 기어이 몇 년 만에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아니. 엄마. 애기는 좀 예민해하는 편이라 몸통을 차라리 좀 길게 깎고..... 애기가 그럴 때 엄마는... 이 애기가 엄마한테 투정 부리는 거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나고, 애기는 우리 집 개다.
"저기요. 원장님. 귀요미가 입질은 안 하나요?"
귀요미는 우리 집 개 이름이다.
"아유. 가끔 해요. 애기가 컨디션 안 좋을 때. 근데 이젠 괜찮아요. 엄마가 걱정되셨나 보네?"
"저. 원장님. 제가 귀요미 엄마까지는 아니에요..."
엄마까지는 아니라니. 지금 생각해도 좀 웃음이 난다. 내가 개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아껴주고 복지 증진을 위해 고심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개의 엄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
보호자로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엄마까지는 아니다. 그 증거로 개와 한 방에서 잠을 자지 않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개가 남긴 사료를 가끔 내가 싹싹 긁어먹는 일은 없다. 개가 아프면 당연히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약을 먹이지만 밤새워 개의 곁을 지키며 눈물을 흘리거나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눈치 빠른 원장님은 그 뒤로 애기 대신 귀요미라고 개 이름을 불러주시고 엄마라는 말 대신에 보호자라고 해주신다.
여전히 나는 우리 집 개를 위해 좋은 사료를 먹이고 꼬박꼬박 심장사상충 약을 먹인다. 때마다 미용을 해주고 춥지 않게 덥지 않게 보살펴준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집 개의 엄마가 될 생각은 없다.
사랑은
더욱더 좋은 것을 해주는 것보다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이걸 해줘 말어? 고민될 때는 안 해줘서 해가 되면 해줘야 하고 안 해줘도 해가 안되면 안 해준다.
사랑을 듬뿍 주기보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만 변함없이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