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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Feb 22. 2022

사실. 나 마녀야.

눈뜨지 않는 용의 눈물 세 방울 급히 구합니다. 

최근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쓰면서 종종 괴로웠다. 글이 안 써져서가 아니라 과거 나를 힘들게 하고 곤경에 빠트린 사람들이 몇몇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껏 눈을 부릅뜨고 욕이라도 휘갈겨주고 싶을 만큼 너무한 사람들이었다. 순진하고 연약한 나는 혼자 슬퍼하며 더욱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웠다. 지금은 안다. 그때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냥 사람 중에는 고작 재미로 사람을 극한까지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종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원고를 쓰면서 생각나는 그 사람들에 대한 미움으로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적도 많았다. 지금이라도 찾아가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여러 영화의 한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모범 국민, 문화 시민이니까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 내가. 한번 맘먹으면. 어?! 아주 그냥?! 어?! 확. 다. 빈틈없이. 어?!)

스스로 품위 있는 인간이기를 늘 원하는 자신을 지키기로 했지만 그 원수 같은 종자들이 하나 둘 자꾸 생각났다. 머리가 아팠다. 




머릿속을 텅 비우기 위해 즐겨보던 전쟁영화나 볼까 하고 넷플릭스를 들어갔는데 00 마녀 어쩌고를 보았다. 마녀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커다란 항아리처럼 생긴 냄비 안에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 옆에 붙어선 마녀는 킬킬킬 웃어대며 냄비 안에 이것저것 던져 넣기 바쁘다. 

가령 뭐 개구리라든지, 눈뜨지 않는 용의 눈물 세 방울.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의 코털, 날개 달린 말의 꼬리털 한 줌. 숲 속 요정의 날개 가루 두 스푼.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다 털어 넣고 커다란 막대기로 휘휘 젓고 있는 마녀는 뭐가 좋은지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다. 

저 냄비 안에 것들이 다 끓고 나면 그걸로 뭘 할 건지, 무엇을 위해 끓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마녀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거면 됐다. 보통 마녀는 저주를 내린다고 하는데 그 저주를 위해 필요한 것을 만들면서 이미 그 끝을 바라보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있다. 

갑자기 나도 저주를 끓이고 싶어졌다. 아직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못된 종자들을 향해 솥단지를 걸고 활활 끓이면서 그들을 위한 저주를 완성하고 싶어졌다. 피할 수 없다면 직면해야지.


자. 이제 나만의 저주 레시피를 만들자. 

먼저 떠오른 얼굴 하나를 위해 솥단지에 저주 재료를 던져 넣었다. 그 사람은 올해 5월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어느 산길을 걷던 중 900년 된 소나무가 갑자기 쓰러져 덮쳐버리게 되리라. 

5월이 필요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필요하고 어느 산길과 900년 된 소나무가 필요하다. 

다음 얼굴 하나를 위해 또 저주 재료를 던져 넣는다. 

비 오는 10월의 가을날 어느 바닷가에 서 있게 되면 갑자기 해변으로 고래가 나타나 그 얼굴을 삼켜버린다. 

비 오는 10월의 가을날이 필요하고 바닷가가 필요하고 고래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저주. 

그래도 정말 이뤄진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겠지... 어쩌면 세상엔 이런 기막힌 저주들이 많고 많을지도 모른다. 악인이 아직 행복하다고, 신은 없는가 보다 하고 체념하지 않겠다. 부족한 재료들이 아직 모이는 중이라고.

아직 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겠다. 그래서 소심하고 겁이 많은 마녀는.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냄비 안을 휘젓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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