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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Nov 29. 2021

5만 원짜리 카디건에 실린 진심.

하.... 훌륭한 쇼핑이었어...

옷을 거의 안 사는 편인데 평일 하루 아이와 백화점에 다녀왔다. 날씨가 요상하여 아침엔 엄청나게 춥고 오후엔 그럭저럭 상쾌한 나날이었다. 작년에 새로 샀던 옷을 올해까지는 입겠지 싶었지만 아이는 나와 달리 새로운 옷을 입고 싶어 했다.

"엊그제 입은 옷을 또 입으라는 거야?"

화들짝 놀라 되묻는 아이 앞에서 그냥 눈알만 굴렸다. (그래 이 녀석아. 하려다가 문득 아이가 지금 사춘기 중인 걸 감안하고 두 주먹을 꽈악 쥐었다. ) 사실 아이는 더 쎈, 초강력 표현을 썼지만 차마 글로 옮길 순 없다. 아무튼 강력한 항의 앞에 새까맣게 어린 시절 옷 투정 한번 없이 자란 내가 비정상인 거지... 반성하며 서둘러 백화점에 갔다.

키가 큰 관계로 주니어 옷은 맞지 않고 성인의류 매장은 디자인이 으른 으른 하여서 아주 애매했다. 보통 고학년이 되면 위도 시컴. 아래도 시컴으로 통일한다던데 아직 아이의 취향은 핑크와 민트 어디쯤이었으니 스포츠 의류도 싫다고 했다. 아무튼 힘겹게 몇 벌의 옷을 사고 아이는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싶단다.

"엄마도 지하상가는 안 가봐서 잘 모르는데..."

엄청난 길치라서 지하상가는 정말 싫지만 또 가야 하겠지. 그런데 웬걸 지하상가엔 정말 많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굉장했다. 특히 행거마다 잔뜩 내걸린 옷은 무조건 만원이라고 쓰여있거나 최신 유행이 뭔지 알 수 있게 가게마다 돋보이는 옷들이 일목요연했다.

신나게 구경하는데 어느 가게 앞에 내걸린 카디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흔한 니트가 아니라 송치 가죽 질감이 느껴지는 원단이었다. 내가 만지작 거리자 점원이 얼른 다가와 말을 붙인다.

"이거 하나 남았어요. 반응이 좋아서 다 나가고 이거 하나 남았어요."

"아. 그래요? 원단이 송치 가죽 같네요. 색깔도 귀엽고 좋네요."

보들보들 진짜 송치 가죽 같네 하면서 연신 만져보았다.

"송치 가죽요? 가죽 좋아하시는구나. 아무튼 입으면 이거 더 예뻐요. 한번 입어보세요."

마침 가죽재킷을 입고 있던 나에게 점원은 옷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더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카디건에 어울릴 만한 원피스와 조끼를 가져오고 색깔별로 바지를 찾아와서 코디를 맞춰주며 열심히 나만 바라봤다.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다. 내가 알아서 볼게요. 소리를 두어 번 했지만 친절한 점원은 끈질겼다.

얼마냐고 묻자 곧바로 오만 원이라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색깔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이라서 카디건과 원피스까지 같이 사버렸다.

솔직히 내가 받는 심리상담 1회 비용보다 저렴했다. 점원이 나를 위해 보여준 옷들과 수고에 대자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만 원짜리 카디건이지만 나에게 눈을 맞추고 열심히 내 마음을 열려는 그녀의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마치 오백만 원짜리 밍크코트를 팔 듯 나에게 오만 원짜리 카디건을 팔았다.

그녀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면 어쩔까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괜찮다고. 너 지금도 나쁘지 않아. 이거 입으니 더 멋져 보여. 아니 안 입어도 넌 이미 멋진데 이걸 입으면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걸? 혹시 알아? 이 카디건을 입으면 너의 마음까지 따뜻해질지?---

라고 말해주는 그녀에게  음... 다음에 다시 올게요... 고맙지만 사고 싶지는 않아요 라고 말할 순 없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누군가의 정성 어린 조언을 받은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기분 좋았다.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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