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하실래요? 피카소하실래요?
나를 위한 노래는 내 귀에 잘 들리게 불러주세요.
미술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나름의 취향은 있다. 특히 고흐를 좋아하는 나는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매번 홀리는 듯한 느낌에 당혹스럽다.
고단했던 고흐의 생애가 느껴져 그 애잔함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보고있다.
그의 작품집을 가끔 들여다보는 이유다.
예술작품을 감상할때 그 작가의 인생을 통틀어보는 것은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작가의 내밀한 표현력은 그만의 개성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므로.
잘 알려진 대로 고흐는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작품만이 팔렸다고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난한 화가의 인내는 길고 숙명적인 예술혼은 그 덕분인지 내내 외로웠으리라.
37세의 삶 동안 그는 몇 번이나 웃었을까.
물론 모든 예술가의 삶이 고흐처럼 고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살아생전 작품성을 인정받아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도 있다.
파블로 피카소다.
그는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을 일찍 접하고 격려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바로셀로나로 옮겨 보다 깊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제공받았다.
무명생활은 비교적 짦았으며 돈, 명예, 예술성까지 만끽했다.
상업성까지 갖춘 천재 화가 피카소.
우리는 무엇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일까.
무엇이 고흐와 피카소를 나누었을까.
우리는 영리한 피카소를 흔쾌히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한다.
그러나 고흐를 생각할때는 애잔하게. 그 작품을 가슴아프게 한번 더 꾹 눌러담아 보게 되는 것은 일면식도 없는 그를 어루만져 준 적이 없음이 괜히 죄스러워서가 아닐까.
당연히 고흐와 동시대가 아니었음에도 우리는 예술가를 알아보지 못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대중이란 이름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흐와 현재의 고흐와 미래의 고흐를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보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할것이 미안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결국 고흐는 고흐로서 살아남아 높이 평가되었듯이, 지금의 대중들이 그를 사랑하고 애처로워하듯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고흐들에게 미안한 격려를 보내본다.
흐드러지는 별빛을 담뿍 받아 당신의 예술혼이 목전에서 만개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