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석 모친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을까.
드라마를 통째로 곱게 다 보질 못했습니다.
군데군데 구멍은 있지만 그래도 본 풍월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작가는 글 속에 칼을 숨겨 놓는다. 모르고 지나치는 이에게는 위험하지 않고.
찾아내 알아본 자에게는 더없이 아프게 찔리는 칼 말이다. ---
동석과 동석 모친에 대한 시원한 해답이 나올 줄 알았다. 최종화이니. 말기 암이니
죽음을 앞에 둔 모자가 지난한 관계의 의문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각자 나름대로 찜찜하나마 답을 내려야 했다.
동석 모친은 끝까지 말없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애정이 아닐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종종 주면서 계속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싫어한다.
자신을 추종하거나 자신이 추종하게 만들거나, 이 두 부류 사람만을 원한다.
서로가 추종을 원하는 이들끼리 붙어있어 봤자 좋은 꼴 날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석 모친은 열서넛 나이부터 식당 잡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의지할 피붙이도 없었을
것이고 보호자 없는 어린 계집아이는 험한 드잡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온통 결핍뿐이던 소녀는 사람의 마음이 꽃만은 아닌 것을 배우며 스스로에 집착하고 애정 하며
살다 동석 부친을 만났을 것이다. 난생처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억센 남자의 손을 잡고
제주로 와서 새 인생을 꿈꿨을 것이다. 가난이야 이력이 났고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내 말대로 쥐락펴락하는 남편과 딸자식에 흐뭇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제주 여자치고 바다 안 들어가는 여자는 없지 싶다. 잠깐 들어가 숨 한 번 참고 전복 따고
성게 따면 그게 다 돈이다. 노는 남자는 있어도 노는 여자는 없는 곳이 제주바다다.
동석 모친은 그 물질을 안 한다. 동석 부친은 다른 여자 다 하는 물질 안 하는 아내를 구박하지
않는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런 남편이 죽었고 모친 대신 어린 딸이 물질을 한다. 동석 모친을 추종하는 남편이 죽어도
어린 딸이 어멍을 추종한다. 이쁜 자식이었다. 그러나 동석은 달랐다. 기질이 급하고 폭발적인
성격을 지닌 동석은 동석 모친의 속을 긁어놓기 일쑤다.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부릅뜬 눈에는
제 에미더러 나를 추종하라고 하는 듯하다. 동석 모친은 아들 동석이 자기와 같은 부류임을 알아차린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외부에 보이는 본인의 이미지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착하고 푸근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다 집에 돌아오면 그걸 빤히 꿰뚫는 듯한 동석의 눈빛이
거슬린다. 에미를 추종하지 않는 자식은 위험하고 도전적이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점점 피어나는
동석의 본성이 거슬려 곱지 않게 바라보다 미워지기도 한다. 급기야.
저것이 성질머리가 저래서 내 서방을, 지 에비를 잡아먹었구나. 생각한다.
네가 태어나기 전엔 내 세상이었는데 통제 안 되는 네가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짜증이 난다.
배고픈 누나가 고기를 다 먹어버렸다고 얼굴에 음식을 쏟아붓는 아들이다. 철철 울던 딸이
다음날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죽어버렸다.
너로구나. 너야. 네가 내 남편을 잡아먹더니 이젠 내 착한 딸까지 잡아먹는구나.
네놈의 그 성질머리가 다 잡아먹었구나.
동석 모친은 동석이 밉다. 그래도 그 말을 꿀꺽 집어삼킨다. 여전히 자신은 동석만 빼고는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 알고 있다. 동석 하나만 망나니가 되면 된다. 그 망나니까지 품는
어멍이 바로 나다.
동석이 그렇게 싫어하는 집에 첩살이를 하러 가며 곧 죽을 것 같은 안주인 없어지면
어쩜 내 자리가 생길지 모른다 싶다. 내가 그 집에 추종하다 보면 결국엔 내 것이 생길 것이다는
계산도 있다. 허구한 날 의붓형제들에게 죽도록 동석이 맞아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오냐. 네 성질머리는 그렇게 맞아야 수그러들지.
동석은 일부러 맞은 자리를 내보이며 에미 속이 무너지질 바란다.
동석 모친은 그럴수록 동석이 더 치가 떨리게 싫고 동석이 그럴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새 남편을 추종하고 추종한다. 여기서 내가 끝을 보리라.
계산이 틀려 그 집 재산은 아들이 다 날려먹었고 자신의 노고는 물거품이 되었다.
동석이가 왜 도둑놈이냐고 따져 묻던 동석 모친은 동석의 입장보다는 헛세월 보낸 자신의 한을
쏟아부었다. 자신의 추종이 실패했음을 동석을 빌어 인정했다.
글을 몰라도 목포 식당 아무 데나 가서 잡일을 하면 동석과 둘쯤은 살 수 있다. 하지만
제주를 떠나지 않고 눌러앉아 첩이 된 것은 에비 누나 잡아먹은 동석에 대한 징벌임과 동시에
새로운 인생에 대한 투자였으며 내가 첩살이를 하면 했지 동석이 너와 둘이는 안 산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동네 개도 거두고 돈도 춘희 줘버리고 차에 자는 아들 올라오라 말 한마디 안 하는 동석 모친은
끝까지 동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부류인 아들이 언젠가 스스로 깨우칠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차려준 된장국은.
그럼에도 나를 미워할 수 있겠느냐는 마지막 미움이었다.
관계의 속박을 벗어나면 사람은 얼마나 자유롭고 넓게 살아갈 수 있을까. 도리와 인연이란 명분으로
행해지는 갖가지 고통과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 바다는 늘 파도가 넘실댄다.
움직이는 파도를 잡으려 하지 말고 너른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