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뒤늦은 추리소설
오늘로 나의 해방일지가 끝났다.
아이를 재우는 엄마란 아이에게 너는 자라. 툭 말하고 tv앞에 앉을 수가 없다.
아이가 잠든 뒤에야 몰래 켜서 허겁지겁 갈증을 채우듯 남은 드라마 분량을 봤다.
작가가 글을 쓸 땐, 대사를 쓸 땐, 그 모든 것이 극 전체를 관통하면서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도 허투루 보여주는 법이 없다.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작가 자신의 의지가 녹아있는 것이 글이다.
좋은 극은, 좋은 글은. 그래서 울림이 크고 오래오래 장면이 남는다.
그만큼 작가의 큰 의지가 담겨있으므로.
나의 해방 일지를 보면 인생은 어쩌면 뒤늦은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사건들이 모여 큰 사건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범인과 방관자,
그리고 협력자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친다.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잡다한 회식 따위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당연히 더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큰 사건 하나가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날 때가 있다.
너무 놀랍고,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기가 차다.
아니. 왜?
하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을 극 전체에 관통시키며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도
허투루 보여주는 법이 없다. 나타날 만한 것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서 저마다 추리를 한다.
도대체 이 사건은 왜 터졌는가.
도대체 어머니는 왜 돌아가셨는가.
도대체 직장상사 놈은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도대체 왜 이 여자는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가.
도대체 왜 나는 제대로 연애 한 번이 안되는가.
도대체 왜 나는 죽음의 순간마다 그 곁에 앉아있었던가.
도대체 왜 나는 이미 당한 줄 알면서도 계속 안달하고 있는가.
탐정이 되어 내 인생을 추리한다.
문제를 풀지 못한 탐정은 초조하고 불안하게 또다시 닥쳐올 사건이 두려워진다.
포기하고 침잠하며 도망친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어느 시골길을 춥게 걷던 나에게 누군가 명령한다.
나를 추앙해. 나도 너를 추앙하겠어.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내가 그 추앙을 받을지 말지에 달려있다.
아낌없이 추앙하고 추앙받아야 한다.
당신과 내가.
추앙하고 추앙받아 서로 구원할 수 있음을 믿어버리자.
말을 나누고 눈빛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도록.
당신과 나에게 닥친 크고 작은 사건을 환대해버리자.
내가 환대한 그것들은 나를 더욱 추앙받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므로.
사건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추앙하는 사람에게로 가자.
타인을 통해 나를 규정하지 말고 타인을 통해 얻으려 하지 말고
타인을 통해 행복해지려 하지 말고.
스스로 추앙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그렇게 솔직하게 존재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