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를 넘어설 수 없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by 돌터졌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고려시대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사료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래서 이 것을 발견한 선배들도 섣불리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곰팡내 물씬 나는 그 종이 더미를 핀셋으로 조금씩 갈라가며 밤이 늦도록 글자와 글자를 조합하고 추리해가는 작업이 벌써 보름째다.


...하여.. ....왕이.... 하시어.... 급기야는....파견토록... 구한 아이가....사관은 이를...





궁에서 쫓겨난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왕이 될 리 없으므로 철저히 일반 상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차도록 장가를 못가고 동네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총기를 잃지 않은 것은 왕의 자식이라는 허울도 좋았겠지만 그 자체가 무엇이든 눈에 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시경은 외지 못해도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얼기 설기 어울려 사는 백성들의 삶 속에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세상 이치로 삼아 모아두었다.


그리하여 어쩌면 어느날 갑자기 궁에서 나온 수십의 무리들이

그대가 왕이로소이다.

라며 비단옷을 들고 덤벼들때 별로 놀라지 않았던 것은 어느정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덕도 있으리라.


머슴꾼 왕이라는 조롱 속에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뜻밖에. 영재청을 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아직은 일러주는 대로 말을 하고 짚어주는 대로 옥쇄를 찍었지만 깜찍한 이 사내는 믿을만한 대신 한 둘을 포섭하고 영재청을 세우라 비밀리에 명을 내렸다.


--아니. 전하. 시루떡을 줄테니 전하 편이 되라니요. 모든 대신이 이미 전하의 충복이옵나이다.


--나도 알고 있소. 시골 아낙네들도 손바닥만한 우물에서 자리싸움을 하오. 여긴들 다르겠소? 내 지금은 줄 것이 시루떡이 고작이나 해가 지나 제법 목소리가 커지면 그 시루떡이 땅도 되고 집도 될 것이요.

그런데 그런 시루떡을 아무나 줘야 되겠소? 자. 그럼 이제 우린 한 편 먹는 게요. 내 자리는 그대들이, 그대들의 자리는 내가 맡아주는 거요...


이 왕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신하들이 아쉬웠다. 자신을 머슴꾼이라며 조롱하는 저들 중에 나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음은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머슴 세경도 오래 묵은이에게 더 쳐주지 않던가.


--지금 바로 눈썰미가 좋은 사람 몇 몇을 승려로 변장시켜 전국을 떠돌도록 하라. 탁발을 하며 여기 저기 머리가 좋고 성품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찾아내도록 하라. 그리하여 부모로 부터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제외하고 구박받거나 매맞고 사는 아이들을 골라내도록 하라.


시루떡을 받은 대신들은 일사분란했다. 어쩌면 저이가 정말 성군이 될 지도 몰라. 가끔 뼈있는 소리도 제법 하지 않던가.


그날로 가짜 승려들은 탁발을 핑계로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조사하고 찾아냈다.


머리가 좋고 성품이 아름다운 아이들은 대부분 사랑받으며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열에 한 둘은 부모로부터 몹시 괴롭힘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왕은 비밀리에 작성된 그 명단을 받아 들었다. 팔도 전역을 다 뒤지니 그 수가 제법 오십이 넘었고 그중에 재능이 특출나다 소문난 아이들을 또 고르니 그 수가 열이 넘었다.


왕은 가짜 승려들로 하여금 그 아이들을 모두 데려오게 하여 가짜 절을 만들어 머물게 하였다.

밤낮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잘 먹이고 많이 웃게 하였다. 눈치보고 주눅들어 하나같이 고개 숙여 벌벌 기던 아이들이 해가 갈수록 훤칠해지고 눈은 총기로 터질듯이 빛났다.


그러기를 몇 년. 왕의 시루떡을 받은 이들이 점차 늙어지고 왕은 더이상 조롱 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이제 장가를 들 나이도 되었을 무렵 왕은 모두 모아놓고 당부했다.


--오늘부로 너희들의 집을 도로 찾아가거라. 가서 네 아비의 이름을 받아 실력을 드러내고 천거를 받으라. 무슨 수를 쓰든지 너희는 나를 다시 만나러 와야 할 것이다.


똑똑한 아이들은 왕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 무슨 방도가 있겠냐 라며 비웃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미 천재로 그 싹수가 남달랐던 아이들인지라 제각각 묘책이 나왔다.


그렇게 아이들은 제 아비의 성을 등에 지고 모두 왕 앞에 다시 모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구해 먹이고 가르친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다. 왕의 시루떡이 땅이 되고 집도 되고 군사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감히 왕 앞에서 머슴꾼 왕이라는 조롱을 보낼 수 없었다.



곱게 잘 늙어 붕어할 날만을 기다리는 왕에게 그 아이들 중 하나였던 대신이 질문을 올린다.


-전하. 어찌 저희들을 찾아낼 생각을 하셨나이까. 그 선견지명에 소신이 살았나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기르니 자식은 그 부모가 키우는 대로 커갈테지. 그것이 진리라네. 제아무리 똑똑한 이도 부모를 넘어설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많이 봐 왔지.

부모에게 매질을 당하는 뛰어난 아이들을 부모와 이별시켜 가르친다면 본래의 재능이 발휘될 것은 명확하지 않겠는가.


자식은 결코 부모를 넘어설 수 없으나 그리하고 싶다면 오로지 두가지를 바꿔야하지.


사는 곳과 보는 이를 바꿔주면 바꿔준대로 크는 것이 사람일세.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모여 저녁 찬거리를 다듬고 있었다.

--아니 저 아랫마을 이가네 요새 왜 조용하데?

--그러게. 아닌게 아니라 요샌 잠잠하네?

--사흘이 멀다 하고 그 집 아들이 두들겨 맞고 도망치더니 요즘은 조용한게 아들이 그예 맞아죽었나?

--아녀.. 소식 모르는 소리하지 말어.

--무슨 소식?

--얼마전에 아랫마을에 왠 거지같은 탁발승 하나가 대문에서 목탁을 딱딱 치더래. 그래서 빌어먹을 왠 땡중이냐 욕을 퍼붓는데 아 글쎄 그 땡중이 이가네 여편네 속곳 안입은것부텀해서 집안 사정을 졸졸졸 읊더라네?

--그래서?

--이 댁 아들의 사주와 가장의 사주가 맞지않아 서로 붙여놓으면 필시 줄초상이 날것이다 하더라네

--그래서?

--방법은 딱 하나. 이 댁 아들을 절로 보내 몇 살까지 밖에 내놓아 키우면 화를 면할 것이요. 하더라네.

--그래서?

--그 표독스런 이가네 여편네가 오냐. 네 놈때문에 집안이 재수가 없구나 하면서 마저 몇 대를 패고는 탁발승 손에 보내버렸다지?

--아이고 독한 년. 저 안 닮아서 그래도 애가 이쁘고 똘똘하더만. 쯧쯧쯧.

-애가 탁발승 따라감서 얼마나 울었을꼬. 쯧쯧

-아니.아니. 줘맞아터진 꼴로 뽈끈 일어나서 스님을 따라갔더라네.





이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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