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소재를 가져온다.
어려서부터 손 예쁘다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친구들, 선생님, 학원선생님 등등 가족들 빼고는 손이 예쁘다고 해줬다.
적당히 살집이 있으면서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손톱은 인조손톱을 붙인 것처럼 길고 뽀족했다.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우정반지 사러가서 금은방 아저씨가
학생은 손이 너무 예뻐서 어떤 반지든지 다 잘어울린다며 손 모델일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물론 거절은 했지만
앞으로 소개팅이라도 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야 하나 나름 진지하게 고려해봤다.
지독하게 추위를 타는 편이었는데 유독 손은 뜨거웠다. 땀없이 뜨겁기만 한 손은 여름이면 친구들을 놀려먹기 좋았다.
조용히 팔뚝이나 등에 내 두 손을 얹어놓으면 모두들
--어디다 고데기를 갖다대냐--면서 화들짝 놀랐고 나는 두 손을 펴고 여기저기 --치익치익. 삼겹살 구워드립니당--소란을 떨고 다녔다.
겨울이 오면 난감한 일이 두 가지다.
버스 손잡이를 미끄럽지 않게 잡으려면 가죽장갑을 껴야 하는데 내 손가락 길이에 맞는 여성용 가죽 장갑은 없었다. 다 조금씩 짧았고 남성용은 딱 맞았지만 손바닥이 커서 헐렁거렸다. 결국 벙어리장갑이 제일 무난했다.
게다가 뜨거운 손 덕분에 친구들은 서로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차가운 자신의 손을 뜨거운 내 손으로 녹였다. 그러면 다른 친구가 또 내 손을 잡고. 또 잡고, 또 잡는다.
여름철 고데기장난을 친 나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내 손의 열기를 악착같이 뺏어갔다.
아무튼 손에 대해서는 별 말을 다 들은 것 같다.
손이 예뻐서 시집 잘 가겠다.
섬섬옥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네 손을 보니 알겠다.
어머니도 손이 이쁘니?
피아노 칠때 엄청 좋겠다? (손길이는 그닥 도움이...)
너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하지? (맨손으로 뽀독뽀독하는데.)
손목은 통뼈인데 손만 이럴수 있나?
너는 손이랑 발목이 가늘구나. 길이 한번 재보자.
당연히 어느새 나는 사람을 볼때 꼭 그 사람의 손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짝사랑이란 걸 해봤는데 같은 학번 아이였다. 집이 비슷한 방향이라서 같이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밥도 먹고 자리도 맡아주는 친구였다. 늘 대여섯명의 무리가 같이 움직였다.
그 친구의 손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남자인데도 손이 가늘고 길고 하얗고 고왔다.
친하게 많이 붙어다니면서도 손 한번 잡아보지는 못했지만(안했지만) 손이 너무 예뻤던 그 친구를 만나면 홀린 듯 손을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밋밋한 내 손과 달리 그 친구는 손등위로 파란 혈관이 돋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고 싶게 볼록 볼록 솟아있는 혈관이 너무 귀여웠다.
황당하게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떡하면 너처럼 혈관이 튀어나오냐--고 물어봤고 그 친구는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이거 많이 하면 혈관나오지 않을까--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여름방학 내내 집에서 공부하면서 열심히 주먹쥐고 펴고 잼잼을 그렇게 했어도 혈관은 커녕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중앙도서관 뒤편에서 남자애들끼리 쪼그리고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담배를 나눠피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때도 나는 담배를 끼운 길다란 그 손가락이 한눈 가득 들어왔었다.
브런치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구경하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관심분야는 아니었지만 재밌어서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으러 들어갔다가 우연히 사진 하나를 봤다.
펜을 쥐고 뭔가를 쓰고 있는 손이 있었다.
예쁘게 꾸민 손을 찍어 올리는 여자들은 많아도 남자의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래서였나...
그냥 그 손사진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하얗고 아기자기한 손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손인데 눈이 자꾸 갔다. 뭔가 참 매력있는 손모양이었다.
손바닥에서 가장 가까운 관절이 툭 솟아있다.
"어. 나 변탠가? 아니. 변태됐나?"
뭘 그 정도에 변태?
부끄럽지만 자주 그 손사진을 찾아서 보고 있다.
"어. 나 진짜 변탠가? 손 변태?"
그러고보니 난 아들도 없는데 아들교육 유튜버(남자다)의 영상을 챙겨보고 있긴 했다.
미술전공의 그 유튜버의 손을 고양이가 나비 바라보듯, 개가 간식쳐다보듯 보고있었다.
방금도 이 글을 잠시 저장시키고 다시 그 작가님의 손 사진을 보고 왔다.
이쯤되면 확실하다.
어. 나 어쩌지?
헐...
나의 히스토리 어디 어느 부분에서 그 징조가 시작됐던 걸까.
걱정스런 마음에 글을 그만 써야겠다.
(사실은 또 가서 그 사진 보려고....)
온라인 상담이라도 받아야겠다. 하...
아니면 손에 관련된 신화라든지 아무튼 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손에 대해 신물이 나게 할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아서, 이 와중에 그 사진은 보고 싶고, 뭔 말 하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손. 손이 일단은 문제니까...
다음 작업으로 손에 관한 시놉시스를 준비해봐야겠다. 라는 말로 슬쩍 마무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