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자기 존중의 회복

by 김시온

나는 28살 여름에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땐 그 말이 전부였다. 방향도 이유도 막연했지만, 무엇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바꿔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듣고, 사람들을 만났다.

독서모임을 만들고, 블로그 대행으로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배운 것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날은 열정에 눈이 반짝였고, 어떤 날은 자괴감에 침대에 등을 붙였다.

그래도 그 해,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알게 된 게 있다.

열심히 사는 것과, 나를 사랑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나를 재촉하는 법만 알고 있었고, 스스로를 돌보는 법은 몰랐다.

책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쫓으며, 매일 새벽을 버티는 내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있는 내가 점점 낯설어졌다.

눈빛은 흐려지고, 말은 짧아졌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게 지쳤다는 신호였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며 스스로를 또 다그쳤다.


다행히도, 나는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그만둘 줄 알았다.

‘잘하는 것’보다 ‘지속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이 일은 내가 진짜 오래 하고 싶은 일인가?’

‘이건 나를 위해 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가?’


질문은 단순했지만, 대답은 매번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나의 감정보다 나의 계획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나는 진짜 ‘나를 사랑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자기계발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이지만, 자기존중은 지금의 나를 껴안는 태도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괜찮은 사람인지 계속해서 외부의 반응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 했다.

누가 좋아요를 눌러주면 기뻤고,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존재지만, 그것이 자기애로 전환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성취를 해도 공허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야 알았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이제는 잘할 줄 아는 것도, 딱히 하나 뚜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게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지속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나를 갉아먹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오래 하고 싶다.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나를 존중했는가’에 따라 하루가 가치 있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젠 연애도, 관계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람을 밀어냈지만

사실은 그 시간 속에 나 자신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를 챙기지 못한 사람이 어찌 타인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내 시간을 확보하고,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내 사람이 다가왔을 때,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묻는다.

성공보다 오래가는 나,

결과보다 균형 잡힌 나,

확신보다 여유로운 나로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서른의 내가 새롭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이제야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나를 빠르게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나를 천천히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