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
요즘 연애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 하트시그널은 시즌 3까지 봤고 그 외에 '환승연애'나 '러브캐처', '나는 솔로', '솔로지옥' 같은 연애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다. 이유라면 연애프로그램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하트 시그널도 더 이상 챙겨보기 귀찮을 정도로 일이 바빴고 바깥세상의 일들이 나에겐 더 재밌었다. 일일이 1시간이 넘는 방송을 다 챙겨보기도 이젠 체력적으로 지치는 느낌도 배제할 수는 없다. 숏폼이 세상을 이끌고 있고 난 그 이끌림을 벗어나질 못한 이유도 있다.
굉장히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결국 바빴다는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일도 바쁘지만 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도 잠시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인 수많은 발자국으로 굉장히 빠르고 바쁘게 움직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와중에 연애를 생각한다는 건 나에겐 사치다. 그래도 가끔은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꼴로 연애를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끝나버린 허무한 순간들을 맛봤다. 내가 아직 바쁨을 놓지 못하고 사는구나. 내가 아직 사랑을 위해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구나.
지난 30년이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잡으려 노력했던 나날들로 가득했다.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그중에 나 자신도 있다. 인스턴트 사랑에 정신건강 또한 나빠진 나를 보며 '사랑 포기 선언'을 외쳤다. 반강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열심히 산 덕분에 소개는 종종 들어온다. 이성을 만날 기회도 생각보다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상처를 줬던 이력이 선뜻 소개를 받겠다는 의지를 막아선다. 가끔은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 나를 안아주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줬으면 한다. 퇴근길에 통화로 "많이 힘들었지?"를 물어보며 위로를 건네주길 바란다. 하지만 연애가 무서워졌다. 소개도 오는 대로 다 받았는데 이제는 두렵다. 그래서 '내 상황을 충분히 잘 이해하는 주변사람을 만나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한다. 자만추 따위 내 삶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씩 생각이 바뀌는 시기가 오고 있다. 계란 한 판을 채운 이 시기에 37일 뒤면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는 계란 한 판이 되어간다. 공간을 비워야 한다. 마음의 공간도 비우고 이제는 불안정한 삶보다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때다. 머리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내 가슴은 아직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에 이보다 적절한 시기는 없다고 말한다. 2026년, 내가 새로이 시작하는 나의 일에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또 너무 바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로 인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날까 두렵다.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다가가기 어렵고 일 때문에 상처 줄까 봐 두렵다.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 연애 프로그램 이야기를 했다. 관심도 없었는데 최근에 유튜브로 떼떼떼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72시간 소개팅 - 삿포로 편'을 보게 됐다. 잠들어있던 연애세포가 조금씩 깨어남을 느꼈다. 마음에 품은 그 친구가 이따금씩 생각났다. '내년 8월에 대학원 졸업한다는데 그 시기에 맞춰서 친해지고 고백을 해야 하나' 같은 막연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머리가 아프다. 일은 너무 바쁘고 최근 했던 MBTI 검사에서 지금 하는 일이 나랑 맞지도 않는 일이라고 하는데 퇴사 전까지 일과 사랑이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 10년 간 ENFP였는데 한동안 INFP에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다. 다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까.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나만 힘든 세상은 아닐 것이다. 다들 똑같이 힘들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잘 살아갈까. 내가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랑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러한 호기심을 나의 밤을 채운다.
사랑 앞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다. 추운 겨울 따뜻한 사람이고 싶고 더운 여름에는 그늘 같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든 물질적 여유든 치열함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왔을 때 쉼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에게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은 무엇일까.